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우호조약 60주년을 맞아 친서를 교환하고,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양국관계 강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두 친서가 대미 관계와 한반도 문제 해법 등에서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교환한 친서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시 주석은 친서에서 “김 위원장과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 양국 관계의 전진 방향을 잘 틀어쥐고 친선협조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감으로써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 주석은 양국이 우호조약의 정신에 따라 형제적인 전통적 친선을 강화해왔고 사회주의 위업의 발전, 지역과 세계평화 수호에 이바지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북한이 경제와 인민 생활을 발전시키며 사회주의 건설 위업을 추진하는 데 대해 견결하게 지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위원장도 친서에서 최근 수 년간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서 양국 관계가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전면적으로 승화 발전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중 우호조약이 적대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을 수호하고 추동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한길에서 중국과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은 지난 1961년 7월 11일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베이징에서 체결한 것으로, 한 나라가 침공을 당하면 다른 나라가 지체 없이 참전하도록 한 ‘군사 자동개입’ 등 조항이 담겼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북-중 관계 전문가인 전병곤 박사는 미국과 치열한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북 핵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이 상호 협력의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관계 다지기' 차원의 외교행보를 우호조약 60주년을 계기로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 박사는 특히 김 위원장의 친서에서 적대세력의 악랄한 책동과 같은 다소 거친 표현들이 포함돼 있는 것은 미국을 겨냥한 북-중 간 정서적 공감대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대외적으로 양국의 단결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중국도 그것에 대해서 어떻든 간에 같이 공감하고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고 외부에 대외적으로도 과시하는 그런 측면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정상의 친서에서 대미정책이나 한반도 문제 해법 등을 놓고 미묘한 입장차가 보인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친서는 ‘반제자주’, ‘적대세력의 악랄한 책동’ 등의 표현을 통해 반미공조 입장을 강조한 반면 시 주석의 친서는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미 비난을 자제하고 북한과의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와 양국 친선협조 발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센터장은 김 위원장은 중국하고만 소통, 협력하면서 미국과는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통중배미’ 입장을 보인 반면 시 주석은 북한과의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수사만 놓고 보면 북-중 간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외정책에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게 간접적으로 확인됩니다. 중국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여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진전시키고 싶은 거고요. 북한은 이제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한반도 문제 해결 방향과 관련해서 북-중 간에 중요한 이견이 존재합니다.”
정 센터장은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도 홍콩이나 타이완, 신장위구르 문제 이외의 기후변화, 북한 문제 등에선 협력이 가능하다고 밝혀왔고 미국과의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도 김 위원장의 친서는 미국의 대중 압박을 반대하고 중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 데 비해 시 주석의 친서는 북한이 바라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반대 등의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박사는 두 친서의 결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중국과 북한의 처지가 서로 다른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대미 관계의 장기 교착에도 대비해야 하는 북한 입장에선 중국으로의 밀착 필요성이 큰 데 비해 북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 온 중국은 미-북 간 갈등 사이에서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홍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미 간에 먼저 답을 하기를 기다리면서 일정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양측이 아직 외교와 대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중국이 지나치게 언어적으로 뭔가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죠. 이것에 대해서 미국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떻든 중국이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는 대외적 입장은 한반도 문제가 굉장히 평화적 방식으로 풀리길 바란다는 것이었거든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하지만 미-중 갈등 격화 속에서 중국의 북한 편들기도 강화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역사적으로 북-중 관계는 깊은 불신을 만들어 온 과정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략적 필요 측면에서 외교적 수사 수준에서라도 미국에 맞서 같은 편에 서려는 입장이 일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 달여 사이에 중국에서 나온 메시지를 보면 쌍중단 얘기 나오고 쌍궤병행 얘기 나오고 또 얼마 전 왕이가 얘기한 것 보면 미국은 수 십년간 지속한 북한에 가한 위협과 압박을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북한 핵 개발이 정당하다는 얘기잖아요. 8월 연합훈련 하지 말라고 중국이 얘기하고 있고 제재에 대해서도 철회하라고 중국이 얘기하고 있고 그러니까 외교적 차원에선 중국이 북한을 최대한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곤 있죠.”
한편 북-중 우호조약 60주년을 맞아 국제사회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 또는 교역 재개 여부가 관심입니다.
두 정상간 친서에서 물적 교류 재개가 임박했다는 신호는 분명치 않습니다.
홍민 박사는 무엇보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박하고 북-중 양측이 인도적 지원이나 교역 등 물적 교류 재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 방역 등 필요한 준비만 갖추면 빠르게 시행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