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홍수 피해를 위로하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동북아를 순방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친서 발신은 북한이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과시하는 대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최근 중국 허난성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해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 위문 구두친서를 보냈다”고 24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큰물 피해의 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고 수재민들을 안착시키기 위한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과 인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피해 지역 인민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자연의 재난을 가시고 안정된 생활을 회복할 것”이라고 응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지난 11일 북-중 우호조약 60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보낸 지 2주만입니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는 지난 17일부터 폭우로 인한 홍수 등으로 지하철에 갇힌 승객 12명을 포함해 모두 51명이 목숨을 잃고 39만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농경지 442㎢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입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이 홍수로 피해를 보자마자 위로의 뜻을 전한 것은 재난 상황에서 양국의 친선과 협조 관계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종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중 정상은 고위 인사 교류나 주요 기념일, 재해·재난 발생 등의 경우에 친서를 교환하는 전례가 있었다”며 “이번 친서도 두 정상 간 교류의 일환”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이종주 대변인]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에 이번 구두친서를 포함해서 총 9차례의 친서를 시진핑 주석과 교환한 사실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동북아 순방차 25일부터 중국을 방문하는 시점에 즈음해서 친서 전달이 이뤄져 우회적인 대미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관측도 낳고 있습니다.
셔먼 부장관은 지난 18일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몽골을 차례로 거쳐 현재 중국을 방문 중입니다.
셔먼 부장관의 방중 일정은 이번 아시아 순방 중에 전격적으로 결정됐는데, 셔먼 부장관은 순방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셔먼 부장관은 지난 23일 최종건 한국 외교부 1차관과 서울에서 미-한 외교차관 전략대화 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는 확실히 미-중 간 협력 분야”라고 말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김 위원장의 친서가 셔먼 부장관의 중국 방문과 맞물려 미-북 협상 재개가 장기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북-중 협력관계를 의도적으로 과시하는 대미 메시지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지금 현재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인데 여기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이 없고 이것을 유도하고 강요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굳건한 협력관계를 보여준다는 그런 의미가 보다 더 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올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 등을 계기로 북-중 정상 간 친서외교가 활발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선 하반기 미국과의 대화 재개 문제에서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중국으로의 밀착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신호를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셔먼 부장관의 순방과 김 위원장의 친서 전달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찾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이번 친서가 지정학적 경쟁 측면에서 외로울 수 있는 중국의 편을 들어주는 효과를 노린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과 한국, 몽골 등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국가들을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동맹을 내세워 순방한 뒤 중국으로 향하는 모양새가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을 연상시키는 행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 친서 전달이 중국 편들기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에 이뤄졌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치르면서도 북 핵 문제에 대해선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도 미-중 고위급이 만나는 계기를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삼중고'로 경제난에 처한 북한이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길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알 것이라며, 미-중 간 대화 계기들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비핵화 협상 재개를 견인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국이 또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본다고 하면 이번 기회를 통해 중국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 재개를 도모할 가능성이 남아있죠.”
보다 구체적으론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과 미-한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쌍중단’과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동시 추진하자는 ‘쌍궤병진’이라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 해법의 원칙들을 미국 측에 보다 적극적으로 압박할 것을 북한이 바라고 있다는 겁니다.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한 입장에선 최대한 중국이 기존에 고수해왔던 ‘쌍궤병진’ 소위 평화체제와 비핵화가 동시 진행돼야 한다는 중국 측 입장을 자신들의 동시적이고 단계적인 접근과 유사한 맥락으로 간주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기존의 중국 입장을 좀 더 강하게 미국 측에 전달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랄 가능성이 높고요.”
박원곤 교수는 북-중 간 밀착이 강화되면서 중국이 북한을 대변하는 수위가 높아지는 양상이라며 북한의 외교기조는 미-중 사이에서 이른바 ‘시계추 외교’를 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미 전략에 최대한 호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북 핵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미국과의 전략경쟁이 겹친 상황에서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편에 서서 미국과 갈등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