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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연합훈련 취소 압박' 담화…전문가들 "미한, 남남 갈등 노린 포석"


지난해 6월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여정의 대남 발언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6월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여정의 대남 발언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자료사진)

남북한 정상이 통신연락선 복원에 전격 합의한 지 불과 며칠 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미-한 연합훈련 취소를 압박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미-한 관계에 틈을 벌리고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내고 “지금과 같은 중요한 반전의 시기에 진행되는 군사연습은 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할 수 있다”며 이달 실시키로 돼 있는 미-한 연합훈련과 관련한 한국 측의 결정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고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며칠간 미-한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며 “한국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합동군사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며 사실상 연합훈련의 전면 취소를 압박했습니다.

또 “연합훈련이 신뢰 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를 바라는 남북 정상의 의지를 훼손시키고 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한 끝에 지난달

27일 단절됐던 남북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한 지 6일만에 나온 겁니다.

김 부부장은 이와 함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한국 내 일각에서 거론되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확대해석이고, 때 이른 경솔한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통신연락선 복원은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뿐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며 “섣부른 억측과 근거없는 해석은 도리어 실망만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연합훈련 취소 압박에 대해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의 2일 정례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부승찬 대변인] “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과 관련해서 시기, 규모, 방식 등에 대해선 확정되지 않았고요, 한-미 당국에 의해서 결정될 사안이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부 대변인은 그러면서 “미-한은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과 관련해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여건 조성,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한 군 당국은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해 훈련 규모와 방식을 놓고 일부 조정을 할 순 있겠지만 취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그러나 연합훈련 연기를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종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통일부는 미-한 연합훈련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에서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방향에서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앞서 지난달 30일 미-한 연합훈련에 대해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 핵 위협이 증대하는 가운데 연합훈련의 전면 취소는 어려울 것이라며, 김 부부장 담화에서 드러난 북한의 비타협적 자세로 미뤄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한 남북간 조기 화해 분위기 조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김여정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조차 고려할 이유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비타협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통신선 복원이 곧 남북 당국 대화나 이산가족 화상 상봉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대사는 북한의 연합훈련 취소 요구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다른 셈법도 깔려 있는 정치공세의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서 미국과의 사이를 벌려놓고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며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오는 6일 아세안지역 안보포럼, ARF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북한은 아무래도 연합훈련은 종래처럼 축소된 형태로라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개연성을 높이 보고 있을 수 있죠. 말하자면 북한이 그 가능성을 아주 높다고 보고 있다면 차제에 자기의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한-미간엔 더 분란이 날 수도 있고 또 남측 내부의 이견도 심화시킬 수 있고 그런 여러 가지 것을 계산했을 수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으로선 훈련이 연기 또는 취소되면 좋고 설사 훈련이 진행되더라도 이후 남북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대남 도발의 명분도 쌓을 수 있는 다목적 포석으로 이번 담화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미국이나 한국 일각에서 대화의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연합훈련 연기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임박한 연합훈련이 현 단계에서 연기 또는 취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전혀 북-미 대화를 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지 않은데 여기서 연합훈련을 중단한다 라는 것 이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죠. 가장 큰 의미는 앞으로 이렇게 되면 의미있는 연합훈련을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합훈련 때때마다 북한이 문제 제기를 할텐데 그럼 그 때마다 연기나 취소를 할 순 없는 거잖아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가 미-북, 남북 대화 재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조 박사는 특히 대화 재개의 동력을 만들려던 한국 정부의 입지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이 상황에서 김여정이 다시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한-미의 결정이 다시 소위 김여정 하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요. 그러면 여기에서 한국의 운신의 폭, 미국의 운신의 폭을 더 좁히는 게 김여정의 담화거든요.”

한편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대내 매체에선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미-한 훈련 진행을 이유로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 담화를 대내매체들이 보도해 주민들에 널리 알렸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김진아 북한군사연구실장은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한국을 겨냥한 강압외교 일환으로 보인다며, 경제 위기 등 내부 사정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북한은 미-한 연합훈련이 실시되더라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 놓을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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