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화적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한 우주과학기술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북한이 미 행정부가 바뀌는 시점에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일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앙위원회 주최로 ‘우주과학기술토론회-2020’이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행사에선 ‘인공지구위성분과’ 토론회가 별도로 열려 위성과 부품의 수명, 안전성, 동작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자료가 전문가의 관심을 끌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우주관측과 기초과학분과, 우주재료·요소분과, 응용기술분과 토론회가 진행됐고, 170여 건의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화적 우주개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에서 이룩된 과학기술 성과를 널리 소개하고 보급해 우주과학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동할 목적”이라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분과 토론회까지 열어 인공위성을 강조한 만큼 장거리 로켓 개발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인공위성을 탑재한 경우를 포함해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릴 때 사용하는 발사체 기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기술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러나 그동안 ‘평화적 우주개발’을 내세우며 인공위성 발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끊임없이 피력해왔습니다.
특히 이번 토론회는 미 대선 이후 침묵을 지켜온 북한이 조 바이든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열려 주목됩니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상대적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미국 정권교체기에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압박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이것을 꺼냄으로 해서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라는 잠재적 위협을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미국 내 바이든 행정부가 탄생하게 될 경우 북한 문제를 우선 순위에 놓으라는 묵언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고요.”
북한은 2014년 우주과학기술토론회를 처음 개최했고 2016년에는 조선우주협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매년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엔 별다른 설명 없이 토론회를 개최하지 않아 미-북 관계 변화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미 차기 행정부와의 핵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인공위성 발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 정책이 유동적인 가운데 북한이 도발 카드를 써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인공위성 발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이 ICBM 완성을 위한 기술적 차원에서도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사실 ICBM을 쏴야 되거든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2017년 11월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실전 배치하기 위해선 사실상 시험을 해야 하는데 그걸 노골적으로 ICBM을 쏘면 중국의 반발, 미국의 제재가 있으니까 그걸 피해가는 방법으로 북한이 늘 이야기했던 우주의 평화적 이용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도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지만 미사일 발사장과 엔진시험장은 유지하고 있다며 필요할 때 언제든 위성발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춘근 명예연구위원] “풍계리는 폭파했지만 동창리 우주발사장도 폐쇄절차를 밟아나가다가 중단을 했어요. 그건 인공위성 발사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거든요. 또 그 후에 옆에 있는 엔진시험장에서 엔진시험을 계속 해왔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음번에 북한이 뭘 시도하겠느냐, 핵실험은 아니고 인공위성 발사다, 그건 남한도 발사하고 있고 다 발사하고 있잖아요.”
박원곤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카드를 쓰는 데 신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평화적 우주이용권을 내세워 위성 발사를 강행했다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촉발시킨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12년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첫 미-북간 합의인 2.29 합의를 맺었지만 같은 해 4월 13일 지구관측 위성 발사라는 명분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쏴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규탄성명을 냈고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미-북 관계는 이후 오랜 교착국면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보면서 군용 정찰위성을 보유하려는 욕심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박사는 북한이 정찰위성으로 쓰이는 태양동기궤도위성을 확보할 경우 한반도와 그 주변의 군사적 움직임을 정찰할 수 있고 정밀 미사일 타격 시스템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춘근 명예연구위원] “북한 입장에선 어떤 면에선 핵을 개발했기 때문에 위성이 더 간절하다 이렇게 저는 생각하거든요. 정찰 위성 하나를 갖게 되면 하루에 두 세 번 남한을 볼 수 있다는 거죠. 3개에서 5개를 갖게 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한반도를 보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관측을 해서 목표지점이 어딘데 정확하게 타격하려면 그 지역의 상황을 봐야 하고 그 다음에 타격을 한 다음에 정확하게 타격했는 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후 3번에 걸쳐 인공위성을 태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2012년 4월 13일과 12월12일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광명성 3호’를 실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4월 발사 땐 실패했지만 12월 발사 때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2016년 2월7일에는 ‘광명성 4호’를 태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위성을 궤도에 올렸지만 지상에 신호를 보내지는 못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