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이 북한 정권에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에게 23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북한이 배상금을 직접 지불하는 일은 없겠지만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함지하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배상해야 할 액수가 23억 달러로 북한 관련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인데요. 어떻게 계산이 된 건지 먼저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우선 이번 배상금을 받게 된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 원고가 17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 170여 명에겐 각기 다른 배상금이 책정됐는데요. 승조원들의 억류 당시 피해 부분과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부분, 그리고 가족 등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 부분이 약 11억5천만 달러로 결정됐습니다. 여기에 법원은 북한의 징벌적 손해배상 부분에 대해서도 정확히 같은 금액을 책정했습니다. 따라서 11억5천만 달러의 두 배인 23억 달러가 북한의 최종 손해 배상금으로 판결된 겁니다.
진행자) 이번이 사상 최대 규모라면, 그 전까지 북한의 배상액이 가장 컸던 소송은 어떤 것이었나요?
기자) 네, 북한에 억류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모에게 판결이 내려졌던 북한의 배상금 약 5억 달러가 이전까지 최고 금액이었습니다. 그 전까진 통상 북한에겐 3억 달러 선에서 배상금이 책정돼 왔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원고가 170여명에 달하다 보니 배상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법적 공방 과정에서 ‘이자’ 부분에 대한 논란이 있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50년이 넘은 사건을 다루다 보니, 원고 측 변호인은 50년 전에 인정받았어야 할 배상금에 더해 이자까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계산을 할 경우, 배상액은 23억 달러의 5배가 넘는 1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됐었는데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자는 판결 시점부터 계산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결국 지난 50년에 대한 이자는 인정하지 않았고, 판결이 나온 이달부터 이자가 계산됩니다.
진행자) 푸에블로호는 북한이 불법으로 나포하고 승조원들을 1년 가까이 억류한 사건이지만,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북한에 사과를 한 점 등을 들어 북한에 대한 소송이 성립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하는데요.
기자) 네, 실제로 당시 미국 정부는 북한 영해 침범과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한 뒤 승조원들을 미국으로 송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당시 사건의 잘잘못을 가리는 건 아닙니다. 대신 각 승조원들이 억류기간 동안 당한 폭행과 고문 등의 피해에 대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미 법원은 승조원 1인당 억류 기간 335일 동안 하루 1만 달러 씩의 배상액을 별도로 인정했습니다.
진행자) 소송 제기 시점에도 관심이 모아지는데요. 사건 발생 50여년이 지난 현 시점에 소송이 제기되고, 또 판결이 나온 이유는 뭔가요?
기자)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과 관련이 있는 부분입니다. 원칙적으로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테러지원국’에 대해선 소송을 허가하는 건데요. 북한은 1988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2008년에 해제가 됐었죠. 그리고 2017년 11월에 재지정됐는데요, 이 때부터 웜비어 가족을 비롯한 여러 북한 납북 피해 가족 등의 소송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의 이번 소송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진행자) 북한과 관련한 소송 소식을 전할 때 ‘궐석판결’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에도 그랬군요.
기자) 네, 궐석판결은 피소를 당한 피고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때, 법원이 원고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지금까지 사실상 모든 피소 사건에 대해 북한은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나온 판결들은 ‘궐석판결’ 형식을 취했습니다.
진행자) 사실상 북한이 패소했다고 해도, 북한이 23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낮은데요. 원고들이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기자) 물론 북한이 배상금을 직접 지불하는 일은 없겠지만,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미국이나 해외에 흩어진 북한 자산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최근 미 정부가 북한 관련 자산이나 대북제재 위반 자산 등에 대해 몰수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피해자들은 이런 자금에 대해서도 소유권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 말고도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요?
기자) 네, 미국 정부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로부터 피해를 입은 미국인과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인당 최대 2천만 달러까지 보상을 하는데요. 이와 관련한 대북제재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녹취: 스탠튼 변호사] “The way it works is that any fines penalties and forfeitures whether criminal or civil, mostly go into that fund…”
이 기금은 제재를 위반한 기업들이 형사나 민사 소송을 통해 부과 받은 벌금으로 충당된다는 겁니다. 스탠튼 변호사는 북한이 2017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되면서 북한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이 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이번 푸에블로호 사건 외에 북한에 대한 비슷한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요?
기자) 네, 북한에 735일간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지난해 제기한 소송이 현재 진행중입니다. 또 북한에 납치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의 부인과 딸 등도 최근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재까진 이들 소송에 대해서도 북한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어, 궐석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진행자) 그 밖에 이번 푸에블로호 판결과 관련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기자) 네, 물론 손해배상액에 대한 공식 판결이 내려졌지만 아직 소송이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닙니다. 최근 변호인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몇몇 서류를 제출했는데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번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가 추가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함지하 기자로부터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에 대한 미 정부의 배상 판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