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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싱가포르 회담 2주년] 2. 지켜지지 않은 미-북 공동성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역사적 첫 만남이었던 2018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번 주로 2주년을 맞습니다. VOA는 세기의 만남으로 주목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되돌아 보는, 다섯 차례에 걸친 특집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의 의미와 그 한계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함지하 기자입니다.

지난달 5일 마크 내퍼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는 워싱턴에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과의 대화 지속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을 언급했습니다.

[녹취: 내퍼 부차관보] “We remain committed to fulfilling the promise of the 2018 Singapore statement, and we look forward to being able to sit down once again with North.”

미국은 여전히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약속을 이행하는데 전념하고 있고, 북한과 다시 마주 앉을 수 있길 고대한다는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퍼 부차관보의 발언은 북한의 시각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 대신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김성 대사]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공고히 하고 발전을 이룩하는 데서 관건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합의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양측이 하나의 ‘공동성명’을 놓고 자신들은 잘 지키고 있지만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6.12 공동성명’은 채택 2년을 맞는 현 시점까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동성명 자체의 문제가 양측의 현 교착 상태를 만들어내는데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총 4개항으로 이뤄진 미-북 공동성명은 미국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역사적인 첫 만남을 통해 서명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공동성명은 ‘미-북 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으로 구성됐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이전 합의들과 달리 ‘비핵화’ 관련 부문을 1항이 아닌 3항에 배치한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4개항에 담기지 않은 연합군사훈련 중단까지 깜짝 발표하면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Under the circumstance that we’re negotiating a very comprehensive and complete deal. I think it’s inappropriate to be having war games.”

북한과 매우 포괄적이고 완전한 합의를 위해 협상하는 환경에서 전쟁훈련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당시 공동성명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두 정상이 직접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 합의한 데 대한 기대가 엇갈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 간 이런 기대는 결과적으로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관련해 가장 많이 지적해온 부분은 성명 자체의 ‘모호성’입니다.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비핵화’ 관련 부분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은 발표 직후부터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입니다.

[녹취: 갈루치 전 특사] “Some disappointment that there was no clarity, time frame coming from North Korean side…”

갈루치 전 특사는 공동성명에 북한 측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포기할지에 대한 시간표 등이 분명히 적시되지 않은 사실이 실망스러운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과장된 문구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올바른 목표를 약속하는 회담이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성명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성명을 들어보이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도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합의문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옛 소련의 군축협정을 예로 들면서, 당시 합의문은 매우 자세히 기술된 문구를 사용했고, 모두가 의무 사항을 알았으며, 매우 구체적인 용어로 정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모호성과 구체성 결여라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무 협상’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그러나 실제 실무 협상은 두 정상이 베트남 하노이와 한국 판문점에서 두 번이나 더 만난 뒤에야 성사됐고, 그마저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결렬로 끝났습니다.

공동성명의 모호성은 미국과 북한이 한 내용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앞서 북한 외교관은 VOA에 미-북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공동성명에 대한 ‘순서론’을 언급했습니다.

공동성명의 순서대로 1항인 ‘미-북 간 새로운 관계수립’과 2항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먼저 이뤄진 뒤에 ‘비핵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겁니다.

실제로 북한은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미국 주도로 이어지고 있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가 완화되고, 과거보다 축소된 미-한 연합군사훈련에도 추가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자신들은 이미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등 조치를 취한 만큼, 이제는 미국이 행동할 차례라는 논리도 펴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구체적인 비핵화 진전 없이 제재 완화나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미 국무부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한 이행 노력을 설명하면서 “동시적이고 병행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순서론’보다는 ‘비핵화’를 포함한 공동성명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노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동성명이 명시한 ‘비핵화’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공동성명 3항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표현으로 ‘북한’이 아닌 ‘한반도’를 비핵화의 주체로 거론하면서 이견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 즉, 한반도의 비핵화를 고수하며 비핵화의 대상에 미국의 핵 위협도 포함시킨 상태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18년 12월 논평을 통해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미국이 북한 비핵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인식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뜻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입니다.

[녹취: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 “This is exactly what many analyst had predicted that North Korea…”

북한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핵우산을 제거하기 전까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많은 분석가들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는 겁니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미국이 동맹을 방어하는 핵우산을 제거하지 않을 것인 만큼, 미-북 협상은 교착 상태를 넘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필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존 크레이츠 국방부 전쟁포로와실종자 확인국(DPAA) 부처장이 지난 2018년 8월 하와이 펄하버-히컴 합동기지에서 북한이 송환한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필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존 크레이츠 국방부 전쟁포로와실종자 확인국(DPAA) 부처장이 지난 2018년 8월 하와이 펄하버-히컴 합동기지에서 북한이 송환한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항 중 유일하게 진전을 보인 건 ‘유해 송환’에 대한 내용을 담은 4항입니다.

2018년 7월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과 관련한 정책에 대해 연설하던 중 6.25참전 미군 유해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At this moment, a plane is carrying the remains of some great fallen heroes from America back from the Korean War. They’re coming back to the United States.”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 때마다 6.25참전 미군 유해를 돌려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도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지난해 11월 담화에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했다”며, 더 이상 미국 대통령에게 자랑할 거리를 주지 않을 것이고,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치적으로 자부하는 성과들에 해당한 값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2018년 8월 숫자 미상의 미군 유해를 55개 상자에 나눠 담아 미국에 돌려보낸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송환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공동 유해 발굴 논의 요청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보내 드리는 특집보도, 내일은 세 번째 순서로 미-북 정상 간 `톱 다운’ 외교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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