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새해 들어 잇달아 개최한 8차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등 주요 정치행사들은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단절된 행사였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세계인권선언 등이 명시한 주민들의 참정권 등 민의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북한의 8차 당 대회가 진행 중이던 지난 8일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위터’에 개인의 참정권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선출)뿐 아니라 정책 논의와 결정에 참여하는 (국민의) 권리”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미첼레트 대표는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영국 맨체스터 인근 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탈북민 출신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그의 발언이 북한 당 대회의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표는 21일 VOA에, 유엔이 결의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 국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북한 노동당 대회는 주민과 단절된, 정권만의 보여주기 행사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당 대회, 최고인민회의와) 주민들 사이에는 커넥트된 게 없습니다. 오히려 주민들을 압박하는 행사죠. 이번 (8차 당 대회가) 비사회주의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내려보낸 것은, 결국 해외에서 들어오는 정보,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국제 습관을 없애라는 것이니까 인권에 대해 한 단계 더 압박을 가하는 정치행사죠.”
주민들의 의사 반영은커녕 오히려 기본권을 더 침해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당 대회를 활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지난주 8차 당 대회 분석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은 “김정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적 현상을 쓸어버리고, 온 나라에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할 것을 지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검찰·사회안전·보위 기관들은 김정은 유일지배체제를 저해하는 행위들에 대한 감시·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의 당 대회는 북한 내 모든 인권 문제를 요약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This summarizes all human rights problems. People do not have a voice. There's a deep rift between the people and the leadership. They have no freedom of expression,”
북한 주민들은 당 대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주민과 수뇌부 사이에 깊은 균열이 있다는 겁니다.
또 정치와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 국민대표를 자유롭게 투표를 통해 선출할 권리, 심지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인정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거나 주민 스스로 행사할 경제적 권리도 전무하다는 지적입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자신이 직접 옛 동유럽의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치행사가 국민과 관계없이 독재자의 권력을 더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There is no popular participation in any Congress in North Korea. I know how it works I live under a communist regime in Romania. People do not participate,”
대중의 참여가 아니라 정권이 낙점한 후보를 99%의 강압적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방식으로, 핵심 수뇌부와 일반 주민들은 국정운영에서 단절돼 있다는 겁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이미 최종보고서에서 이런 정치행사 등 북한 노동당 제도의 문제점을 자세히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조선노동당의 권력에 견제와 균형을 도입하도록 지체 없이 근본적인 정치적·제도적 개혁을 실행”하고, 이 개혁에 “독립되고 공정한 사법부, 다당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방 및 중앙 차원의 의회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한편 영국의 박지현 대표는 8차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14기 4차 회의에서 고질적인 성차별도 반복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고위직은 대부분 남성으로, 북한 당국은 여전히 유엔의 권고를 무시한 채 17~18세기의 정치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아직도 17~18세기 노예제가 있었던 그 때 시대를 그냥 보는 것 같죠. 남자들이 앞에 줄줄이 훈장들을 달고 나오고. 남존여비 사상이 그대로 있어서 여자들을 무시하고. 21세기에 진짜 이런 나라가 없잖아요.”
박 대표는 영국은 물론 유럽의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그 나라의 발전상과 비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올해 출범한 117대 의회 상·하원 의원 539명 가운데 여성이 144명으로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하원 모두 여성이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해 발표한 세계 ‘여성 파워 지수’에서 북한의 정치적 평등성이 100점 만점 중 14점으로 조사대상 193개국 중 137위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북한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아직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며 정치 영역의 경우 “여성은 당 고위 간부급 중 5%, 중앙정부 관료 중 10%뿐”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 내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원천적 봉쇄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하다며, “이런 제약으로 북한 여성들은 세계 여타 지역의 여성들처럼 집단행동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