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양종합병원 건설 공사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속도전에 따른 안전 사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공사와 미흡한 안전기준 등으로 건설 노동자들의 사고율이 매우 높다며, 북한도 국제노동기구(ILO)의 안전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1일 평양종합병원이 73%의 공사 속도를 보이며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개 호동의 20층짜리 병동 골조공사가 마감 단계에 이를 정도로 전례 없는 공사 실적을 이룩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거의 매일 전하는 공사 현장 사진을 보면 야밤에 불이 켜진 가운데 ‘충성의 돌격전’, ‘치열한 철야전’ 등 공사를 재촉하는 선전구호들로 작업장이 뒤덮여 있습니다.
20층 높이의 대형 건물 두 동으로 알려진 평양종합병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전에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사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북한전문 매체인 ‘38노스’는 최근 평양종합병원에 관한 보고서에서 “촉박한 기한이 작업장 사고와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 저자인 벤자민 실버스타인 미 외교정책연구소(FPRI) 연구원은 22일 VOA에, “정치적 고려에서 시간 압박이 가해지면 항상 안전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실버스타인 연구원] “Whenever there is time pressure induced by political concerns, safety risks increase.”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VOA에, 북한에는 안전 부주의로 건설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최근에는 임금 문제로 건설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다는 소식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North Korea has plenty of construction accidents as well, but also the construction workers were complaining because they weren't being paid.”
실제로 지난 2014년 평양 평천구역의 아파트가 완공 직후 봉괴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러시아와 중동 지역에서는 거의 매년 북한 건설 노동자 수 십 명이 추락사 등 안전 사고로 사망한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과거 이런 실태를 조사했던 한국의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앞서 워싱턴에서 연 행사에서 해외 공사현장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북한 노동자가 매우 많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승주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현장에서 상해를 입거나 죽음을 당한 노동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적극적인 북한 당국의 조치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평양의 대외업체 지배인을 하다 해외에 망명한 켄 씨는 22일 VOA에, 북한 건설 현장의 안전 사고 실태는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씨]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죽고, 실수해서 떨어져 죽고, 안전모도 중국에서 제일 싸구려 안 좋은 것만 가져다줘요. 그래서 일하다 머리가 깨져 죽는 사람, 작업하다 전기 사고, 도구 실수로 사용해 짤려 장애인이 되고 엄청 많지요. 창전거리 때는 죽은 사람이 거의 1천 명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속도전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피로가 쌓이잖아요. 시간을 맞춰야 해서 24시간 공사를 하면 잠을 2~3시간 자고 일하잖아요. 그래서 졸려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많아요.”
켄 씨는 북한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사 기일 안에 무조건 완공해야 하는 ‘속도전 공사’, 자재 부족과 부패로 시멘트 대신 모래를 더 섞거나 철근 등 자재를 규정만큼 투입하지 않는 날림 공사, 그리고 노동자와 행인 모두 안전의식이 매우 결여돼 있다는 겁니다.
[녹취: 켄 씨] “북한에 안전규칙이 왜 엉망진창이냐면 자본주의 나라는 아파트 건설할 때 10~ 20m 구간에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게 다 텐트를 설치하고 그물망을 설치하잖아요. 북한은 낙마라고 하죠. 아파트에서 떨어질 때 그물치는 법도 없어요. 그런 사고를 막을 안전장치를 하지 않고 시작을 해요. 속도전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주민들이 그 옆을 막 지나다녀요.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통제해야 하는데 못 해요.”
평양시 아파트 건설에 동원됐던 한 돌격대원은 과거 한국의 시민단체인 ‘열린북한’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아파트 1층이 올라갈 때마다 1명씩 죽어 나갔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에 만연된 노동권 침해와 직결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한국, 미국, 일본, 유럽 등 인권을 제대로 지키는 나라에서는 노동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봅니다. 그래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철저한 법도 있고, 안전과 보건에 대해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노동을 투쟁으로 묘사합니다.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하는 겁니다. 모든 주민이 동원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하고 어린아이들까지 동원시킵니다. 일터가 아닌 전쟁터이기 때문에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고 정권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스칼라튜 총장 등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해 ‘산업안전보건 및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을 지키고, 작업 환경과 노동자들의 안전·복지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