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북한의 잇단 숙청 바람, 강경 대남정책 예고"

지난 5월 불경죄로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사진은 지난 2월 16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현영철 북 인민무력부장(오른쪽 앞)이 광명성절(김정일의 생일)을 맞이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

북한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래 처형된 간부가 7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권력체제 연구의 권위자인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CNA) 국제분석국장은 북한 내 이같은 숙청 작업을 강경한 대남정책을 예고하는 신호로 분석했습니다. 또 김일성-김정은 시대에 비해 압축적이고 급속도로 이뤄지는 숙청 바람이 체제 불안정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고스 국장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고위 인사의 처형설이 돌면 결국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그동안 더 많지 않았나요?

켄 고스)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건강 문제, 혹은 재교육 처분을 받고 근신하다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죠. 물론 숙청 당하거나 실제로 처형 당한 이들도 있고요. 최근 일부 언론이 처형된 것으로 보도한 최영건 내각 부총리는 특이한 경우입니다. 군부나 안보 부문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 관료이기 때문입니다. 남북경협과 개성공단 개발에 관여하기도 했지만, 중대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최영건 부총리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책 추진에 불만을 표출했다가 총살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만, 이렇게 정부 관료가 숙청될 때는 정책 변화의 전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자) 어떤 방향으로의 정책 변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켄 고스) 최영건 부총리 숙청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때 상장으로 강등됐던 김영철의 대장 계급 복권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정책이 ‘벼랑 끝 전술’로 대표되는 훨씬 강경한 쪽으로 선회 중이라는 관측도 가능합니다. 물론 추측이긴 합니다만 과거 한국과 관계했던 인사를 제거하고 훨씬 강경한 인사를 승진시킨 데서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는 거죠.

기자) 김정은 제1위원장 집권 이후 처형된 핵심 간부가 7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물론 상당히 많은 인사가 사라진 것이지만, 김일성과 김정은 시대와 비교해서도 그렇습니까?

켄 고스) 절대적인 숫자만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김정일이 1970년대 후계자로 지명됐을 때 1980년대까지도 많은 반대파 숙청이 이어졌고, 1990년대 권력을 승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일성의 경우에도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수많은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을 숙청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처형된 건 아니고 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에선 젊고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가 그런 작업을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기자) 부작용이 따르지 않을까요?

켄 고스) 그래서 지도부가 대단히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고, 실제 그런 것보다 더 불안정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지도부의 교체 과정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과정이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비해 훨씬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지도부가 취약해지면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 이를 꺼리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도부 내에 긴장감이 팽배할 경우 그 안에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 경쟁이 일어나 더욱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자) 이런 과정을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권력이 실제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십니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켄 고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숙청과 세대교체 등을 통해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할 뿐아니라 경제 부문에서도 성과를 내야 합니다. 김 제1위원장이 후자에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김 제1위원장은 지도부를 안정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숙청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도발에 나서려고 해도 우선은 지도부가 안정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내부 혼란이 클 경우 선뜻 도발에 나서기 힘듭니다. 그럴 경우 북한 입장에선 결국 외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갖지 못하게 되고요.

기자) 내부 숙청이 자주 단행되면, 그동안 만큼은 외부 도발을 함부로 감행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켄 고스) 북한의 도발 역사를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권력 내부 혼란이 있을 경우엔 도발을 자제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혼란이 가라앉고 정권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권력 내부의 기본적 합의가 이뤄진 뒤에야 도발을 감행하는 수순을 밟아왔습니다. 만약 도발의 역풍이 거셀 경우 거기 맞서기 위해서라도 체제 안정은 필수적이니까요. 따라서 김영철이 최근 대장으로 복귀한 건 북한이 다시 도발에 나설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체제를 안정시켰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분석이 맞다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최영건 내각 부총리의 숙청 이후 단시일 내에 숙청 바람이 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앞서 급속한 숙청 과정 자체가 불안정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거기엔 체제 붕괴의 위험성도 다분히 깔려있는 것 아닐까요?

켄 고스) 불안정 요소가 다분한 게 맞습니다. 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2~5년 안에 권력을 공고히 하지 못할 경우 북한 지도부 내 권력 역학이 바뀌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가 더 이상 견제 받지 않는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재자, 혹은 제3의 권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권력이 더욱 다양한 세력으로 분산돼 불안정이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구심력이 강한 최고 지도자 중심 체제인 북한에 집단지도체제 등이 난립할 경우 심각한 사회 균열도 예상되고요.

기자) 권력의 중심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미국과 한국으로서는 어려운 선택들만 남은 것 같은데요.

켄 고스) 북한과 관련해 ‘좋은 선택’이라는 건 없습니다. 북한과의 관여를 통해 아주 조금씩 체제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길게는 수 십 년까지도 걸릴 수 있는 과정입니다. 반면 북한이 극적인 붕괴를 맞을 경우 역내 정치와 안보에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