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오는 11일 1차 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전격 합의함에 따라 정부 당국 간 채널이 8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하지만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가 커 당장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는 11일 열리는 제1차 남북 당국회담은 지난 8월25일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의 핵심 합의사항이었습니다.
8.25 합의 당시 김관진 한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브리핑입니다.
[녹취: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자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2007년 장관급 회담 이후 8년 만에 남북 간 상시적 대화채널이 복원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설명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뤄졌던 당국 간 만남은 ‘접촉’ 수준이었지만 이제부턴 당국 간 ‘회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논란이 예상됐던 회담 수석대표의 격 문제를 ‘차관급’이란 절충안으로 우회하고, 회담 장소를 당초 합의한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개성에서 열기로 융통성을 발휘한 것도 8.25 합의 이후 조성된 남북대화 국면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또 다른 한국 정부 당국자는 올해를 넘기면 내년엔 남북한의 정치일정 등으로 한동안 당국회담 개최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연내 당국회담 개최’라는 실리적 측면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국회담이 열려도 수석대표의 급이 낮은데다 의제에 대한 입장 차가 커 당장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서강대학교 김영수 교수입니다.
[녹취: 김영수 서강대 교수]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마지노선을 그어놓은데다 회담 과정을 최고지도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 대표가 재량권을 낼 수가 없습니다. 합의를 한다 해도 이행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군사훈련을 비롯해 암초와 걸림돌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남북한 실무접촉에서 남북한은 각각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당국회담의 중점 의제로 제안했습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의 실무접촉 결과 브리핑입니다.
[녹취: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 “우리 쪽은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근본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된다´고 강조를 했고, 북한은 ´금강산관광 문제가 당면한 문제이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과 같은 일회성 상봉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전면적인 생사 확인과 명단 교환, 이에 따른 서신 왕래와 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반면 북한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실무접촉 때도 공동보도문에 금강산관광 재개를 당국회담 의제로 명기하자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지난 10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당시 북측 상봉단장인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연계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녹취: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장] “금강산관광도 빨리 하고,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자주 여기 오셔서 만나는 것도 자주 만나시고...”
북한이 이처럼 금강산관광 재개를 원하는 이유는 내년 5월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경제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란 분석입니다.
인제대학교 진희관 교수는 금강산이 열릴 경우 사실상 5.24 제재 조치가 무력화되는 효과가 있는데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하는 마식령 스키장과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경제적 지원 뿐아니라 선대에 중단됐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재개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북측으로선 한국 정부가 금강산관광 정도는 해줄 줄 알고 이산가족 상봉에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2008년 한국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신변안전 보장 조치가 그것입니다.
여기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관광 대가로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 또한 고민스러운 대목입니다.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금강산관광은 개성공단과 달리 ‘경치’를 보는 대가로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북한 입장에선 가장 손쉽게 외화를 벌 수 있는 ‘달러 박스’인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일각에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을 맞교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문제는 맞교환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경원선 복원과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역시 군사적 보장 문제가 걸려 있어 단기간에 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한이 주장해온 5.24 제재 해제 문제도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이 걸려 있어 어려운 과제라는 지적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실무접촉에서 5.24 조치 해제를 거론하지 않는 대신 체육교류를 비롯한 민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자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당장 해결이 쉽지 않은 5.24 조치 해제 대신 비정치 분야의 교류협력부터 추진해 5.24 조치를 해제할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전옥현 전 제1차장입니다.
[녹취: 전옥현 전 한국 국정원 제1차장] “8.25 합의의 6번 항을 보면 남북 간 민간교류를 증진한다고 돼 있고 이미 민간교류는 시행 중입니다. 이는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조치로 한국에게 5.24조치를 해제하자고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한국 정부가 이번 당국회담을 ‘1차 당국회담’으로 명명하고 회담 정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처럼 첨예한 남북 간 입장 차를 반영한 것이란 평가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남북대화의 흐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당국회담은 한 번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 핵 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 어려운 만큼 남북이 일단 가능한 교류협력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13일 아시아태평양 뉴스통신사기구 (OANA) 회원사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현 단계에선 남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며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