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슬린 북한주재 초대 영국대사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영국 정부의 대북 원조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평양에 주재한 슬린 전 대사는 19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영국의 대북 지원은 ‘개발’ 원조가 아니라 주민들에게 외부 환경과 정보를 소개하는 성격이라며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대학 국제정치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슬린 전 대사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영국 정부가 지난 6년 간 북한에 공적개발원조로 500만 달러 이상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영국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슬린 전 대사) 대북 지원은 민감한 문제이고, 논란 거리가 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 보도된 영국 정부의 대북 원조 사업은 대부분 ‘개발’ 보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고, 따라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평양에 주재할 때 진행했던 소규모 원조 사업도 지원 대상과 접촉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기자) 당시 북한에서 어떤 종류의 지원 활동을 하셨습니까?
슬린 전 대사) 당시 대북 지원 예산은 현재보다 훨씬 적었는데, 학교와 농장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지원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문이었죠. 예를 들면 영어교과서를 제공한 뒤 제가 매주 평양의 고등학교를 방문해 영국 생활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서방인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학생들은 제 설명이 교사들이 하는 말과 완전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기자) 따라서 영국 정부의 대북 지원이 계속돼야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슬린 전 대사) 관련 활동이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죠.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 들은 영국과 유럽연합의 대북 지원은 북한인들이 바깥세계에서 통용되는 다른 방식의 사고와 견해에 노출되도록 돕는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활동과 결과를 가져오는 원조 사업이라면 쉽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기자) 지금까지 영국 정부가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을 거뒀다고 보십니까?
슬린 전 대사) 그렇습니다. 제가 평양에 주재할 때, 그런 활동이 없었다면 접촉할 수 없었을 다양한 계층의 주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다른 방식의 삶과 사고를 접하도록 하는 장기적 임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주민들이 정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결국은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북한에 더욱 많은 외부 정보를 유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기자) 하지만 주민들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업이라도 결국 북한 정권의 부담을 덜어줘 무기 프로그램에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부작용은 없을까요?
슬린 전 대사) 북한 당국은 애초에 저희가 제공한 영어교과서와 같은 교재를 제작할 순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저희는 추가적이고 가치 있는 통찰력을 영국이나 서방 어린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자료에 넣어 제공한 것이고 상당히 긍정적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 북한 농부들에게 제공한 비옷도 당국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품목이고, 많은 감사를 전달받았습니다. 물론 북한 정권의 부담을 덜어줄 외부 지원도 있겠지만 제가 언급한 것들은 그런 범주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기자) 영국 정부가 북한인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실시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는데요.
슬린 전 대사) 평양의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북한 직원이 공관원들의 인터넷 사용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라워했는지 모릅니다. 평양에 주재하는 영국 등 서방대사관들이 추진했던 관여 프로그램의 작은 예라고 할 수 있죠. 북한인들에게 바깥 세계가 얼마나 크게 발전했는지 보여줌으로써 당국의 선전선동에 도전하도록 하는 순기능이 있는 겁니다. 또 비판적 분석력을 길러 북한체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는 취지도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강조한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규명에도 필요한 장기적 과정이죠.
기자) 영국 ‘BBC’ 방송도 그런 취지로 대북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거죠?
슬린 전 대사) 저는 BBC 방송의 그런 계획을 적극 환영합니다. 10여년 전 제가 북한에 주재할 당시 북한인 1~2명이 외부 라디오방송을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최근 조사를 보면 청취자 수가 대폭 늘었습니다. 냉전시절 ‘VOA’,‘자유유럽방송(RFE)’, ‘BBC 월드서비스’ 등은 ‘철의 장막’에 갇힌 나라들에 큰 영향을 줬고, 북한에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자) 하지만 ‘VOA’를 운영하는 미국 정부는 평양에 공관이 없는 반면 영국 정부는 대사관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대북방송을 시작한 뒤 영국대사관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거나 공관 폐쇄 위기까지 갈 우려는 없나요?
슬린 전 대사) 옛 소련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영국 정부가 북한 상황을 고려한 위기관리 분석을 했을 것으로 확신하고,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데이비드 슬린 북한주재 초대 영국대사로부터 영국 정부의 대북 원조 활동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