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대북 구상을 비난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해 간접적인 거부 의사를 보이면서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한국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대북 국정 목표와 과제에 대해 전임 보수 정부의 동족대결 정책의 복사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28일 ‘시대의 요구와 촛불민심을 똑바로 보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운영계획에서 밝힌 2020년 한반도 비핵화 달성, 북한 인권 문제 해결 등을 거론한 뒤, 한국 정부의 대북전략이 북 핵 폐기와 흡수통일에 궁극적 목표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제시한 국정운영계획에 대해 보인 첫 반응입니다.
‘조선의 오늘’은 한국 정부가 화해와 협력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며 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바란다면 미국의 핵 위협 제거 문제부터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정운영계획에서 밝힌 ‘신경제지도 구상’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치적쌓기와 인기몰이에만 신경을 쓰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19일 발표한 국정운영계획에서 북 핵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인 2020년 새로운 비핵화 합의 도출을 목표로 비핵화 초기 조치인 핵 동결에 이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하는 포괄적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 핵 문제 진전에 맞춰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고 궁극적으로 남북한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들겠다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제시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상에 불신에 찬 반응을 보임에 따라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신범철 교수는 북한의 이번 반응에 대해 한국의 남북 군사당국 회담과 적십자회담 개최 제안에 대해 간접적으로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교수 / 한국 국립외교원] “(북한이) 자기들은 이제 핵 개발을 해서 핵 보유국 지위를 얻으려고 하고 있는데 한국이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대화의 범위는 제한하고 있잖아요. 핵 문제는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이니까. 그런 대화의 포맷으로는 북한은 들어올 수 없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비친 것으로 생각해요.”
전문가들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내심 바라고 있는 북한이 파격적인 경협 확대를 통해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신경제지도 구상 자체를 반대하진 않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북 핵 해결을 전제로 삼고 있는 입장을 철회하라는 주장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문재인 정부에게 계속 지금보다 더 파격적인 남북관계에 대한 의지를 보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초기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인도적 문제 해결, 이것 말고 이것들을 뛰어 넘는 자신들이 전략적으로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의지를 보여라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대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이 정도 갖고는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죠.”
북한의 반응이 외곽의 선전매체를 통해 나왔고 거친 표현을 자제한 점을 들어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요구에 북한 당국도 신중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북한의 반응은 자신들의 불만족을 간접적으로 전해 온 수준이라며 당국 차원의 공식 논평을 하지 않은 것은 남북관계에 큰 흠집을 내지 않는 수준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 전환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