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는 김정은이 김정일과 달리 미국인 억류 문제를 협상 카드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30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김정은의 의도를 알기 어려워 미국인 억류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북한이 자신의 인도주의 방북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리처든슨 전 주지사를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최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등으로 북한 내 미국인 억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북한의 미국인 억류 문제를 대하는 트럼프 정권, 이전과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억류 미국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 정부가 더 나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억류자 석방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냉랭한 미북 관계 속에 한국계 미국인 3명이 북한 수용소에 갇혀 있는데, 다음달 열리는 (평창)올림픽, 이산가족 상봉, 억류 미국인 문제 등이 북한과의 대화에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 북한 내 미국인 억류자 문제가 이전 보다 훨씬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김정은은 억류 미국인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르죠. 김정일 시절 북한은 억류 문제와 관련해 늘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카터 전 대통령 등의 방북을 요청하면서 늘 협상이 준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미국인을 붙잡아만 놓고 있습니다. 뭔가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묵하는 거죠. 이전과는 다른 태도인데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인 억류자 문제, 더 나아가 비핵화 문제는 어떻게 풀고 싶은 건지, 대화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동계올림픽과 관련해 한국과 대화했다는 겁니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길로 한 걸음 전진한 것으로 저는 평가합니다.
기자) 현재 북한에 억류 돼 있는 미국인은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계(조선족 포함)입니다. 특별한 동기가 있는 걸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현재 억류돼 있는 미국인 대부분은 평양과학기술대학교 관련 인사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을 관광하거나 북한에 사업체를 뒀던 미국인 중에는 한국계가 많았습니다. 오하이오주 출신의 대학생이었던 오토 웜비어의 경우처럼 북한이 꼭 한국계 미국인만을 겨냥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북한은 웜비어를 전략의 일부로 이용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불가사의한 환경 속에서 억류 중 숨졌지만 말입니다. 북한이 그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기자) 북한에는 2013년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과 함께 방문하신 게 마지막이죠? 혹시 그 이후로 북한 방문을 시도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쪽에서 제 방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북한에 가서 미군 유해 송환 문제, 북한에 친지를 둔 한국계 미국인의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직원이 작년에 인도주의차원에서 북한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북한이 왜 방북 요청에 답하지 않은 걸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우선 미국과 아주 나쁜 관계에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김정은이 아직 미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비핵화 대화에 나서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핵 버튼’이라든지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묘사하는 등 김정은을 자극하는 행동 또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미북 관계에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제안한 남북대화를 받아들이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 것 같아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물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문제 등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킨 건 분명합니다. 또 남북대화가 안보 관련 대화로 연결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유엔주재 북한 외교관들과는 계속 접촉하시는지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네. 뉴욕에 있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들을 방문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뉴욕에 있는 북한 대사들과 여전히 대화하고 있습니다. 두 세 달에 한 번씩은 하는 것 같군요. 인권 문제, 북한에 친지를 둔 미국계 한국인의 가족 상봉 문제 등을 그들에게 얘기합니다.
기자) 미국인 억류자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는 건 북한이 이들을 석방하기 위해 내세우는 조건이 이전과 달라진 겁니까? 북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한다고 보시는지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과거에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에 대한 협상이 가능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그들을 왜 붙잡아 두고 있는지, 왜 억류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지 언급하지 않고,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김정은은 미국과 관련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둔 것 같습니다. 미국인 석방, 미군 유해 송환, 북 핵 문제 모두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라도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게 김정은의 ‘게임 플랜’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 없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쌍중단’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트럼프 정부에서 북한 내 미국인 억류자 석방과 관련해 북한과 협상 교섭에 나서달라는 요청을 해 온 적은 없습니까? 또 직접 미 정부에 요청해 보신 적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 저는 미국인 억류자 석방 문제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현 정부에 얘기 했습니다. 당국도 당연히 그들의 석방을 원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협상에 대한 반응을 얻고 싶어 하니까요.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붙잡혀 있는 미국인을 데려오고 싶어 합니다. 저는 백악관에서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NSC)를 상대로 관련 현안에 대한 자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미 정부 관리가 아닌 만큼, 그들의 외교 정책을 방해하지 않고 협조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대화를 뒤로 하고 선제 군사공격 등을 거론하는 정책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변함없습니다.
기자) 슈미트 구글 회장과 북한의 인터넷 상황도 점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슈미트 전 회장이 북한에 인터넷 사용 자유 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슈미트 회장이 북한에 인터넷 접속 등과 관련해 협력할 것을 제안했는데, 지도부가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거절했습니다. 인터넷 개방이 독재정권에 미칠 영향을 생각했겠지요. 컴퓨터 교육 기관 2곳을 방문했는데, 학생들은 많았고 자연스러운 실제 모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기자) 북한에 억류 돼 있는 미국인 석방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북한에 억류 돼 있는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이 또 다른 대화를 이끌어 낼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 정부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더 잘 준비돼 있다는 것을 압니다. 국무부, FBI 등 관련 당국이 억류 미국인 가족들과 접촉하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로부터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들의 석방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