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한반도의 비핵화'가 결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자신의 저서에선 김 위원장의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표현했습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 핵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은이 이야기하는 체제 안전 보장은 바로 북한 권력의 실체인 세습 통치구조 보장, 또 김정은이 절대적인 권력구조 보장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려고 합니까? 'CVID'는 쉽게 말하면 강제사찰, 무작위 접근입니다.”
태 전 공사는 14일 한국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권력의 핵심요소이자 근간인 '수령절대 권력 구조'가 핵 폐기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CVID' 접근법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미-북은 북한 핵 완전한 제거가 아닌, 위협을 제거하거나 핵무기를 대폭 감소하는 방향의 합의를 이룰 것이라면서 “비핵화 종이로 포장해 북한의 핵보유국을 인정하는 것이 (미북 협상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이날 공개한 자신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통해서도 '비핵화'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했습니다.
특히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도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건,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만이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고 말한 사실과, 2006년 1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장과 강석주 북한 외무차관이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 철수라는 데 공감했다는 점을 이런 주장의 근거로 제기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북한이 '핵 질주 계획'에 따라 2017년까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지만, 2018년은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라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도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태 전 공사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의 문구 일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책을 통해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철도 건설 문제'는 과거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도 추진됐었지만,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한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 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를 철도로 연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가 최근 남북정상의 만남 이후로 크게 개선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는 주장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2013년 7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관계자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쌍욕을 한 사실과 2015년 자라 양식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그 자리에서 처형을 지시해 총살을 당하게 만든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3대 세습으로 이어져 온 김씨 일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오직 김정은 가문만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제 국가”라며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을 노예사회에서 해방시키는 '노예해방 혁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한 주민에게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통일”이라고 강조한 뒤 “통일의 주체를 북한 주민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체제와 이념을 하나로 통일하고, 민족 문화와 동질성을 융합하는 것은 그 이후의 가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김 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책의 제목으로 인용된 '3층 서기실'은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당 내 부서로,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공식 명칭 없이 유지됐던 '3층 서기실'은 최근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 등 외부 인사들이 방문하면서 '당중앙위원회 본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태 전 공사는 설명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북한 권력 구조를 정확히 알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북 정상회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북 핵 폐기를 순조롭게 이끌어내는데 자그마한 보탬과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으며, 당초 3월에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남북 정상회담에 돌발 악재로 작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루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