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북한, 남북 고위급회담 전격 취소...미북 정상회담 재고려도 언급

지난해 4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서 인공기를 든 주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미-한 연합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미-북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남북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연합군사훈련도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한 '중지'를 요청한 건 16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전날인 15일 이번 회담을 요청했던 북한은 만남을 약 10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남측에 회담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북한은 이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이 자신들에 대한 도발이라며 남북 고위급회담을 중지하게 된 배경을 밝혔습니다.

특히 이번 훈련에 미군의 'B-52' 전략핵폭격기와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 등 100여대의 각종 전투기들이 동원된다며, 국내외 여론은 이번 훈련이 역대 최대 규모이자 북한에 대한 '최고의 압박과 제재'를 계속 가하려는 미국과 한국의 변함없는 입장의 반영이라고 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최근 책을 출간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를 겨냥한 듯한 주장도 보도에 담겼습니다.

통신은 한국 당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서도 그에 배치되는 온당치 못한 행위에 매달리고 있다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최고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태 전 공사는 14일 한국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한편,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성격이 대단히 즉흥적이고, 급하며, 거칠다고 평가했었습니다.

통신은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다음달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취소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강경한 입장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김 부상은 16일 오전 발표한 담화문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 부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것이지만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가 오는 조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부 고위 관리들이 '선 핵 포기 후 보상'과 '리비아식 핵 포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생화학 무기 등의 완전폐기' 주장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며, 최근 미국이 주장해 온 핵 폐기 방식에도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회담 취소 통보와 미-북 정상회담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한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백태현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일정을 알린 직후, 연례적인 미-한 연합 공중훈련을 이유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며, 이는 “4월27일 양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감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백태현 대변인] “정부는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북측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조속히 회담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합니다. 북측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남북 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송영무 한국 국방부 장관은 16일 오전 빈센트 브룩스 미한연합사령관과 긴급회동을 열고 북한의 이번 결정과 향후 사태 추이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맥스선더 훈련은 계획된 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이번 훈련과 관련해 미국과 한국 간 이견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맥스선더 훈련은 조종사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으로, 작전계획 시행이나 공격훈련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16일 미군의 F-22 랩터 전투기가 광주 공군기지 상공을 날고 있다.

한국 언론 등에 따르면 현재 맥스선더 훈련에는 F-22 전투기가 참가한 상태지만, 북한이 주장했던 B-52 전략폭격기는 불참할 예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로 인한 파장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미-북 정상회담은 예정 대로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국회의원은 16일 'VOA'와 만나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습니다.

[녹취: 박지원 의원] “이미 북한에서는 한-미 군사훈련을 이해했고, 지금 현재 진행 중이고 이달 말에 끝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갑자기 취소해 버린 것은 최근 미국에서 북-미 회담을 앞두고 너무 허들 높이를 자꾸 높이기에 치중을 하고, 그런 데에 자극을 받지 않았는가...”

박 의원은 동양의 지도자들이 체면을 중시하고 실리를 중시한다면서, 미국이 너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짓밟아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 볼튼 보좌관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핵 폐기 방식은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는 데 명분을 잃게 만든다며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서훈 한국 국정원장이 조정을 해 가면서 미-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VOA'에 북한의 이번 결정이 '큰 판'을 깨기 위한 건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군사훈련을 핑계로 댑니다만은 이건 구실에 불과하고, 내적 논리도 있고… 북-미 정상회담의 레버리지를 좀 치우기 위한 전략일 뿐이고...”

안 소장은 현재 미국과 한국이 진행 중인 군사훈련은 2009년부터 해 온 것으로, 폼페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이미 북한이 문제를 삼지 않고, 양해하겠다는 합의를 했던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스스로도 현재 미-북 정상회담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협박성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미-한 연합군사훈련 중단이 사실상 남북 정상이 합의한'판문점 선언'에 명시돼 이번 논란이 계속해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수석] “판문점 선언에 잘 읽어보면 상호 간에 군사적 긴장이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적대행위를 공중에서든, 육상에서든, 바다에서든 안 하기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미 간의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판문점 선언이 말하는 적대행위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연합군사훈련에 반대할 권리를 북한에 넘겼고, 북한은 이를 근거로 앞으로도 항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천 이사장은 지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