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힐 전 차관보] “핵신고∙검증의정서 받고 영변시설 폐쇄 필요…시간표는 공개 언급 말아야”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북한과의 후속 협상에서 핵 시설뿐 아니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서’와 ‘검증 의정서’를 받아내야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가 지적했습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적절한 비핵화 시점을 북한에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특정 시점을 입에 올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힐 전 차관보를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지난 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을 만나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조언하셨다고요?

힐 전 차관보) 폼페오 장관과 상당히 좋은 논의를 가졌습니다. 북한과 협상을 진행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또 제가 참여했던 2008년 협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당시 북한으로부터 핵 실험에 사용한 플루토늄 양 등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담긴 핵 신고서를 전달받긴 했는데, 완전하지 않았고, 검증의정서 또한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줬죠.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서와 국제 기준에 맞는 검증의정서를 받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기자) 폼페오 장관이 북한 협상 팀을 만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절차가 되겠군요.

힐 전 차관보) 그렇죠. 북한으로부터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완전한 신고서를 말이죠. 또 폼페오 장관은 ‘싱가포르 성명’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들을 북한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북한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안을 준비해 뒀는지 등을 말이죠. 지금은 보여지는 이렇다 할 뭔가가 없는 상황이니까요.

기자) 이상적인 비핵화 ‘로드맵’은 어떤 것일까요?

힐 전 차관보) 어려운 과정이 되겠지만 핵 프로그램 신고서에 고농축우라늄(HEU)에 대한 부분도 포함돼야 합니다. 그리고 2008년 협상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검증 의미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핵 물질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영변 원자로 등을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겁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영변 원자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변 핵 시설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38노스’의 기사는 어떤 근거로 작성됐는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폼페오 장관은 북한이 적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하지 않고 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와 대화를 하는 동안, 핵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는 없습니다.”

기자) 미-북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폼페오 장관을 미국의 협상 대표로 명시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화 상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힐 전 차관보) 왜 아직까지 폼페오 장관을 상대할 고위급 대표가 없는지 추측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폼페오 장관이 며칠 내로 이 부분을 명확히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 비핵화에 시간표가 없다는 발언이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왔는데요. 북한에 정확한 시간표를 제시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결과에 큰 차이가 있을까요?

힐 전 차관보) 특정 시한에 대해 얘기하는 건 현명하지 않습니다. 폼페오 장관이 2020년까지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이 합리적 시간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걸 북한이 확실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기자)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놓고 행정부 내에 이견이 크다는 관측도 있는데요.

힐 전 차관보) 볼튼 보좌관과 폼페오 장관 사이에 약간의 마찰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니까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요리에 비유하면서 말이죠. 볼튼 보좌관은 대통령의 생각과 결정을 잘 반영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지 이해하는 만큼,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국무부가 북한과의 후속 협상을 앞두고 북한을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지정한 것이 비핵화 논의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요?

힐 전 차관보) 국무부가 북한과의 협상 때문에 그 보고서를 발표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협상 시기에 맞춰 보고서 제출 시기를 조정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해당 보고서는 늘 이맘때 공개됐습니다. 따라서 북한과의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기자)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너무 등한시 한다는 지적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힐 전 차관보)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아스펜 연구소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전 거기서 이런 말을 했는데요. 만약 우리가 지금 북한과 양국 정상화를 위한 협상 단계라면 당연히 인권 문제는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합니다. 그런 협상이라면 북한 인권 문제는 ‘기준점’이 돼야 할 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북한과 세계를 위협하는 핵무기 제거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핵 협상에 인권 문제를 더해야 한다는 게 진지한 제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크리스토퍼 힐 전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부터 북한과의 후속 협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