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대북제재 해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됐습니다. 북한은 ‘일부 제재 해제’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모든 제재 해제’에 대한 요구를 받았다며 상반된 입장을 밝혔습니다. 함지하 기자와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적 제재가 아닌 일부에 대해서만 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하면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해석이 됐는데요.
기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리 외무상은 자신들이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5건, 그 중에서도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밝혔는데요. 11건 가운데 5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부 항목에 대한 해제는 숫자나 비율로만 놓고 봤을 때 절반이 안 되는 ‘일부’가 맞습니다. 그러나 리 외무상이 해제를 요구한 5건의 제재에는 현 대북제재 체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조치들이 들어 있습니다.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라는 표현이 틀렸다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진행자) 사실상 전면적 제재 해제라는 말이군요?
기자) 현재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무기와 사치품 거래를 금지하고 핵과 관련된 기술교류를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외교활동을 제한하는 내용들도 들어있고요. 그런데 이런 내용들보다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경제 제재’입니다. 석탄 등 모든 북한산 광물과 섬유, 수산물을 다른 나라들이 수입할 수 없게 하고, 원유와 정제유 제품을 북한으로 판매할 때도 상한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제재 조치들은 모두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5건의 안보리 결의에만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에 리 외무상은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에 대한 해제라는 단서를 달았는데요. 마치 일부 항목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상 금수품과 관련된 조치를 의미한 것으로, 여전히 ‘전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쉽게 말해서 2016년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요. 이전 제재들은 북한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건가요?
기자) 네. 실제로 2015년까지 북한에 부과된 제재 결의들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무기와 사치품 거래 금지 외에 눈에 띄는 조치가 없습니다. 2016년 이후 제재들에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전면적 해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본격적인 제재 체제가 2016년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재 전문가들과 대화를 해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2016년 이전까지 북한은 제재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전문가들마다 약간씩 의견이 다르지만, 대부분 북한에게 제재가 본격적으로 가해진 시기를 2017년 8월로 봅니다. 이 때 안보리는 결의 2371호를 채택했는데, 북한의 최대 수출품인 석탄을 비롯해 철광석과 수산물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어 한 달 뒤엔 2375호를 통해 섬유 수출을 막았습니다. 당시 북한의 의류 품목들은 5대 수출품 중 2개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3개 품목은 앞서 제재된 석탄, 철광석, 수산물이었습니다.
진행자) 실제 가시적인 효과가 구체적인 수치로도 나타났죠?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게 북한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거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2016년 북한은 중국으로 26억3천만 달러어치의 물품을 판매했는데요. 이게 2018년 2억1천만 달러로 줄어듭니다. 석탄과 수산물, 섬유 등을 팔지 못하면서 92%나 감소한 겁니다.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도 북한산 물품의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요. 따라서 추가로 수억 달러의 외화 수입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무역뿐 아니라 해외 노동자들도 2017년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이후 속속 귀환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군요?
기자) 북한 경제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2016년과 2017년에 부과한 5건의 제재가 사실상 북한을 아프게한 유일한 조치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현금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서 브라운 교수는 지난해 11월엔 제재가 길어지면 물자 부족과 밀수의 증가 등으로 국가 시스템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도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 내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재를 회피할 방법을 찾는 과정 속에서 물자 조달 비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지난 몇 년 간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아져 북한의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뿐 아니라 다른 제재도 받고 있는데요. 다른 제재들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죠?
기자) 현재로선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은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하는 개인과 기관 등에 독자 제재를 부과하고 있고요. 또 한국 등도 독자제재를 통해 북한과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건 역시 유엔 제재가 가장 시급하고, 또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5건의 제재가 원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에 관한 제재였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각 제재 결의들은 무기 실험 등의 행동이 행해지지 않는 경우, 동결하거나 해제하게끔 돼있다, 이런 주장을 했는데요. 맞는 말인가요?
기자) 물론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이 제재 결의를 채택하도록 한 요인이었던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 5건의 결의는 단순히 무기 실험 때문에 부과된 건 아닙니다. 각 결의의 문구를 살펴보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첫 제재 결의인 1718호부터 이런 사실이 명확히 기재돼 있는데요.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단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콤 전 미 재무부 선임 경제자문관은 ‘VOA’에 “(2006년 채택된) 대북 결의 1718호는 제재 부과의 원인을 ‘실험’이 아닌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 개발’ 중단에 두고 있고, IAEA 재가입과 IAEA 사찰 허용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험 중단만을 제재 해제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진행자) 앞으로 유엔 안보리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제재 해제에 대한 논의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기자) 북한의 우방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중순부터 줄곧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같은 상임이사국인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등의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당장 해제는 어려워 보입니다. 여기에 3월 안보리 의장국을 맡은 프랑스는 1일 기자회견에서 현 상황에서 제재 해제나 완화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함지하 기자로부터 북한이 요구한 대북제재 해제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