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 리 전 AP 평양지국장] “북한 취재는 인내심 시험대…외신기자들까지 분열 시도”

지난 2016년 5월 7차 당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외신 기자들.

방북 취재는 기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극도의 어려움을 준다고 진 리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이 밝혔습니다. 진 리 전 지국장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요구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북한 당국과 3년 동안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현지 외신기자들까지 분열시키려 했다며, 취재 접근성을 높여달라는 일치된 요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을 오랫동안 다뤄온 서방 기자들과의 인터뷰 시리즈,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진 리 전 AP 평양 지국장을 조은정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2012년 1월 AP 통신의 초대 평양지국장이 되셨습니다. 서방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에 상주하셨는데요. 원래부터 희망했던 자리인가요?

리 전 지국장) 솔직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부터 계속해서 북한 문제를 다뤘죠. 하지만 평양에 지국을 여는 사람이 될 지는 몰랐습니다. 평양 지국 개설은 톰 컬리 전 AP통신 사장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언론 자유의 투사였고, 새로운 곳들에 AP 지국을 열었습니다. 쿠바의 아바나, 베트남의 하노이 같은 곳들에 말이죠. 그 다음 순서가 북한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지국장으로 취임한 첫날 평양 지국 개설이 제 임무라는 얘기를 들었죠.

진 리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

기자) 북한의 동의는 어떻게 끌어내셨나요?

리 전 지국장) 지국 개설이 하룻밤에 이뤄졌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남북한 취재를 담당하는 서울 지국장에 임명된 것이 2008년입니다. 북한과 본격 협상은 2011년부터 했지만, 수 년 전부터 전략을 세우고 사전 준비작업을 했죠. 김정일은 통치 마지막 몇 년 동안 미국에 접근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포착해 활용했고요.

기자) 김정일 위원장 통치 마지막 시기라면 취재 거리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리 전 지국장) 김정일은 사망 전 까지 몇 년 동안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했습니다. 미국의 관심을 끌고 합의를 맺으려는 의도였죠. 미국과 북한은 2012년 2.29 합의를 맺었습니다. 저는 그보다 앞선 2011년 12월 17일 이 합의가 곧 타결될 것이라는 보도를 제일 먼저 했죠. 이틀 뒤에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사망 전에 2.29합의가 거의 성사됐었고, 몇 달 뒤 김정은 정권 들어 공식 체결됐지만 어쩌면 김정은은 처음부터 이 합의를 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추진한 합의도 아니었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기자) 북한에서 취재는 어느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나요?

리 전 지국장) 북한 안팎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접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제가 북한 내부 현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북한을 훨씬 더 잘 이해한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3년을 북한에서 보내며 북한인들의 생각, 성격, 정신 세계, 정치 체계, 사회적 관습 등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또한 일상의 어려움도 알게 됐는데 매일 너무나도 춥고,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렵고, 약도 없습니다. 또 너무나 자주 정전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저도 너무 익숙해져서 손전등을 들고 다녔고, 정전이 되도 하던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게 됐죠.

기자) 지방도 많이 다니셨나요?

리 전 지국장) 물론입니다. 매달 평양을 벗어나 지방으로 갔습니다. 평양과 그 외 지역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합니다. 평양 이외 지역은 매우 가난하고, 해가 지면 불빛도 없습니다. 어린이들도 매우 여위었는데, 한국 어린이들은 대조적으로 통통하죠. 남북 어린이들의 차이가 너무나 극명합니다.

지난 2013년 2월 미국의 전직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첫 북한 방문 당시, 진 리 지국장이 북한 입국을 위해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한 로드먼을 인터뷰했다.

기자) 후임자인 에릭 탈매지 평양지국장은 북한 주민의 일상과 관련한 보도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AP에 이어 평양에 지국을 낸 프랑스의 AFP는 영상과 사진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냈죠. 외신의 평양발 정치안보 기사를 접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리 전 지국장) 제 상사들은 평양에서 정치안보, 탐사 보도를 내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기자로서 북한에 대해 글을 쓸 때 물론 여러 다른 나라의 취재원을 활용하지만, 북한에서도 정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정치수용소, 핵시설에 접근을 못 한다면 큰 퍼즐 조각을 놓치는 것이죠. 저도 두 곳에 대한 접근을 계속 요구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취재는 일상의 모습에서 시작하더라도, 북한 당국과 신뢰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점점 더 무게있는 기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언론사들이 북한 당국의 한계를 계속해서 시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정한 한계를 수용하지 말고요. 북한도 거래에서 얻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프로파간다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북한이 취재 접근 수준을 높여주면 북한에도 이득일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죠.

기자) 북한에서 취재하면서 제한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리 전 지국장) 제가 일해본 곳 중 가장 불만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기자 뿐 아니라 인도주의 요원, 외교관 모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곳이죠. 북한인들은 정부의 규칙에 사로잡혀 있고, 공포의 문화에서 일하고 삽니다. 따라서 어떤 요구를 해도 항상 ‘안 된다’고 먼저 말하죠. ‘된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북한 현지에서 기사가 많이 안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현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기자) AP와 AFP의 지국 개설 이후 2017년에는 미국 CBS 방송 사장 일행도 평양을 방문해 지국 개설 가능성을 타진했는데요. 서방 언론이 평양에 지국을 늘리면 취재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까요?

리 전 지국장) 외신 기자가 많은 것은 매우 도움이 됩니다. 집단으로 취재 접근 개선을 요구한다면 말이죠. 제가 평양에 있을 때 저는 중국 신화통신과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 기자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우리 모두가 외신 기자로서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외국 정부들에게 하듯 외신 기자들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일부에게 특혜를 주면서 말이죠. 저는 우리 모두가 북한 당국에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언급하고 싶은 건 AFP는 프랑스 언론사라서 지국을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미국 언론도 평양에 지국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미 재무부의 대북 제재 때문입니다.

서방 언론의 첫 평양지국장으로 3년 간 근접 취재한 진 리 전 AP 평양지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