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향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은 개성공단이 북한 핵 개발의 자금줄이라는 주장은 북한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임금 전용에 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현금 대신 현물지급제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함께 공단 재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진향 이사장을 이조은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방미 첫 일정인 미 연방 하원의원 대상 설명회를 마치셨는데요. 공단 재개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했다고 평가하십니까?
김 이사장) 설득하러 온 게 아닙니다. 개성공단의 평화,안보,경제적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온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성공단의 가치를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 의원들이 개성공단의 본질적 가치를 제대로 알고 한반도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설명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온 겁니다.
기자) 많은 의원들이 우려하는 개성공단 임금 문제가 이번 설명회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보십니까?
김 이사장) 글쎄요. 이 문제를 논의하려면 먼저 북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북한은 국가 공급(주도) 경제이기 때문에 임금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없습니다.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지불 문제에 대한 우려는 이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시간이 한정된 이번 설명회에서 북한 경제체제에 대한 기본개념과 더불어 공단 임금 지불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자) 공단 임금 지불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김 이사장) 북한에서 임금은 생활비와 더불어 국가가 공급하는 '표', 즉 상품공급권(물자교환권)으로 지급됩니다. 개성공단을 국제공단으로 만들려면 북한도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북한 측을 설득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못마땅한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달러를 주니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달러를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달러를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외환시장이 없습니다. 북한 측 공단 근로자가 전체 노동시간과 임금에 직접 서명하면, 한국 측은 여기에 맞춰 달러로 임금을 줍니다. 그러면 북한 당국은 임금 총액 가운데 국가공급가격으로 주는 임금만큼은 상품공급권(물자교환권)으로 주고, 나머지는 북한의 원, 즉 현지 통화로 받습니다.
기자) 북한이 근로자 임금을 물자교환권이나 생필품으로 지급한다는 건 결국 당국이 임금을 통째로 가져간다는 건데, 어떻게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전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죠?
김 이사장) 해법은 임금을 현물로 주는 겁니다. 쌀이든 분유든, 민생 복지를 위한 생필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겁니다. 공단 재개를 위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측이 협상 시 저에게 늘 했던 말이 있습니다. 공단 근로자가 받는 50~120 달러로 북한에서 4인 가족이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고 말입니다. 저희도 북한의 그런 사정을 잘 알지만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지 않은 북한 책임이라고 얘기해주죠. 공단 임금과 관련한 달러 문제의 근본 해법은 달러가 안 들어가도록 현물을 주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기자) 결국 북한 당국이 임금과 자원 운용 등 공단의 모든 부분에서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김 이사장) 당연히 북한 당국이 모든 통제권을 쥐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이기 때문에 북한 근로자는 개인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을 하죠. 개인은 국가가 맡긴 임무를 하고 국가는 개인의 생활을 책임지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기자) 그렇다면 북한의 개방화 촉진이라는 측면에서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것 아닌가요?
김 이사장) 우리는 개혁개방을 얘기할 때 보통 자본주의화를 생각하는데, 북한은 골간이 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장화를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이 완전히 자유시장 경제가 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에 시장화를 접목시켜서 일부 문제를 보완할 순 있죠. 시장화의 운영 원리와 같은 자본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성공단은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개성공단은 학습장인 거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순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에 가장 적합한 체제를 만듭니다.
기자) 유엔 제재는 대북 거래에 연관된 개인 혹은 단체에 수출 신용이나 보증, 보험까지도 승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런 제재에 저촉 없이 공단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김 이사장) 공단 근로자 노동의 대가로서 제재 대상 품목이 아닌 쌀과 같은 생필품을 주는 것인데. 그것은 제재 대상이 아닐 겁니다.
기자) 공단 재개가 미국 기업엔 어떤 도움이 되나요?
김 이사장) 개성공단 만한 시장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노동제도, 조세제도, 임금 수준, 숙련도 등 모든 부분에서 전 세계 최고의 경제적 비교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굉장한 투자 가치가 있는 거죠.
기자) 북한이 비핵화 문제에서 행동 변화를 보여야 개성공단 재개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게 많은 의원들의 입장인데요.
김 이사장)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주장에는 '개성공단은 달러 박스다'라는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이 전제로 깔려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달러 박스가 아닙니다. 공단 임금의 100%가 북한 측 근로자들의 삶을 위한 민생 목적으로 쓰여집니다. 개성공단도 비핵화도, 모두 평화를 위한 겁니다. 이 둘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비핵화도, 개성공단 재개도, 종전 선언도 같이 하면 됩니다. 비핵화 전까지 개성공단 재개는 적절하지 않다는 건 개성공단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왜곡된 오해에서 비롯됐습니다. 개성공단은 비핵화 만큼이나 평화에 기여 가치가 큽니다.
기자) 현 시점에서 미 의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나요?
김 이사장) 개성공단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년이란 시간 동안 왜곡된 시각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미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개성공단 설명회였는데,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오해 정도만 풀 수 있었다면 이번 설명회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김진향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개성공단 재개 필요성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