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접촉 제의에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물밑에서 전개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북한의 무반응에 대해 협상에 대비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새 대북정책을 검토 중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부터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의 15일 정례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이종주 대변인] “한-미는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 전반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공조해왔습니다. 북-미 접촉 시도와 관련해서도 한-미 외교당국 간 사전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과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했다는 문제 의식 아래 기존 정책을 다시 들여다보며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한과의 접촉을 다시 시도한 것은 복합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중국 문제 등 우선적인 외교 현안들에 둘러싸인 바이든 행정부가 일차적으로 닫혀있던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동시에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상황 관리 차원의 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8차 당 대회를 통해 ‘강대강, 선대선’이라는 대미정책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핵무력 강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또 미국과 한국이 비록 지휘소훈련 방식의 축소된 형태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중단을 요구한 연합훈련을 진행 중인 가운데 자신들도 군 동계훈련을 펼치고 있는 중이어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훈련을 명분으로 한 군사 도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미국 측 접촉 제의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것은 구체적 제안 없는 만남에 대한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는 탓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은 지금 구체적인 제안을 갖고 오라는 것이지 일단 만나자라는 쪽은 트럼프 행정부 때 본인들이 당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접촉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정리해놓은 상태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지금 묵묵부답이라는 얘기는 사실은 대화를 원하는 상태에서 좀 더 구체적인 제의가 오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미국 본인들 말로도 대북정책을 리뷰하는 중이라고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말했거든요.”
북한으로선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 공은 미국 쪽에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의 침묵은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대비해 자신들의 몸값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들 식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과거에도 종종 보여줬던 협상 전술의 패턴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기간 중에 북한이 몸값을 높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것은 북한이 1월 당 대회에서 이야기한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 그러니까 핵 능력을 강조하면서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그런 정책 기조에 따라서 몸값 높이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전문가들로 짜여진 바이든 외교안보 라인도 이 같은 북한의 패턴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무응답을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여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접촉 제의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향후 정책기조를 보다 뚜렷하게 시사한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박원곤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초부터 북한과의 대화 노력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 시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명분을 쌓아 놓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결국 중국에 대한 메시지죠. 우리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북한이 안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만약 도발을 한다, 군사적 행동을 보인다 하면 제재를 강화할 만한 명분이 쌓이는 것 아닙니까.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행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은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문제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거든요.”
이런 가운데 이번 주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나올 대북 메시지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아직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수립되기 전인만큼 북한의 비핵화와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원론적 수준의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성 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대행이 대북정책 검토가 향후 수 주 내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들 장관의 방한 때 이뤄질 미-한 외교장관 회담이나 양국 외교.국방 장관간 이른바 ‘2+2 회의’를 통해서 동맹 의견수렴 작업이 일단락 지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신 센터장은 대북 제재 완화 여부를 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미-한 간 이견 조율이 이번 장관급 회담을 통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국 정부의 장관급 메시지가 미국 장관급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측면에선 보다 어려운 부분, 그러니까 타협이 그동안 이뤄지지 못했던 부분에서 서로 조율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렇게 봐요.”
박원곤 교수도 이번 외교.국방 장관간 연쇄회담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면으로 열리는 첫 미-한 장관급 회담인 만큼 여기서 나올 공동성명은 향후 두 나라 대북 공조의 방향을 가늠할 첫 결과물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