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남북한 역할과 위상 큰 차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의 유엔총회장.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지 30주년을 맞는 가운데 유엔 사무총장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유엔에서 한국과 북한의 위상과 역할은 확연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데요,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과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하루 앞둔 16일 트위터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반도 모든 민족에게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기원한다”는 겁니다.

30년 전인 1991년 9월 17일 유엔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녹취: 사메트 사하디/제46차 유엔총회 의장] (번역) “만장일치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이 결정됐습니다.”

1948년 유엔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다”고 공포한 지 43년 만입니다.

이로써 한국(ROK)은 유엔의 161번째, 영문 국가명(DPRK)이 한국보다 앞서 북한은 160번째 가입국이 됐습니다.

이날 유엔본부 앞에는 한국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됐고 유엔총회 회의장에도 두 나라의 정식 명패가 등장했습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1년 9월 17일 뉴욕 유엔본부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한국과 북한은 유엔 첫 연설에서 한 목소리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녹취: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과 궁극적인 통일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녹취: 강석주 북한 외교부부 부부장] “언젠가 남북한은 단일 의석으로 유엔 총회에 참여하게 될 날이 올 것임을…”

이렇게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큰 진전으로 평가됐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유엔 동시 가입이 한국엔 ‘외교적 승리’, 북한엔 ‘외교 패배’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은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남북한 동시 가입을 공식 천명했지만, 북한은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하는 획책”이라는 논리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국호로 한 단일 가입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주요 동맹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과 중국이 잇따라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자 북한이 ‘불가피한 선택’을 한 셈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외무성도 유엔 가입 결정을 공식 선포한 성명에서 “남조선당국자들에 의해 조성된 일시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서 유엔에 가입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유엔 가입을 계기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북한대표부를 개설하며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 땅에서 제한된 범위의 외교 활동을 할 명분을 얻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1990년대 초 미국 국무부에서 북한담당관을 지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16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1992년 9월 뉴욕에서 민간단체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오찬에서 김영남 당시 북한 외교부장과 허종 유엔대표부 대사 등과 만나면서 ‘뉴욕채널’이 사실상 처음으로 가동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녹취: 퀴노네스 박사] “In September 1992. I was invited to a lunch in New York City, hosted by Asia Society. Attendee in that luncheon was foreign minister Kim Yong-nam…My orders were to speak in Korean and attract the attention of North Koreans. Because at that time American diplomats were not allowed to talk to North Koreans…”

퀴노네스 박사는 당시 북한 인사들에게 북한 핵 활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으며, 이후 뉴욕과 워싱턴 등에서 북한 측 인사들과의 만남을 이어간 이후 로버트 갈루치 당시 북핵특사와 북한 대표단의 정식 협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미-북 관계에서 연락사무소 역할을 했던 미국 국무부와 북한대표부 간의 이른바 ‘뉴욕 채널’ 개설도 유엔 가입 때문에 가능했던 셈입니다.

30년이 지난 현재 유엔에서 한국과 북한의 위상은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한국은 뒤늦게 유엔 회원국이 됐지만 유엔 내 재정적, 인적 기여 등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유엔 정규예산에서 한국의 분담률은 가입 초기 0.69%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27%로 193개 회원국 중 1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내년엔 9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유엔 가입 5년 뒤인 1996년 처음으로 유엔의 핵심 조직인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이 됐고, 2001년에는 당시 한승수 외무장관이 유엔총회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이어 2006년에는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관 출신인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은 16일 워싱턴의 민간단체 한미경제연구소(KEI)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주제로 개최한 화상 간담회에서, 한국은 짧은 기간 유엔에서 큰 성취를 이룬 국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원수 전 사무차장] “Yes, because we took our membership, and also responsibility as a country which achieved the triple crown in such a short period of time, it means responsibility for South Korea to be a responsible and respected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so it means several things…”

김 전 사무차장은 특히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유엔 등의 지원을 바탕으로 원조 공여국이 된 첫 번째 나라로서 이런 성공 사례를 다른 회원국과 공유하는 ‘모범 국가’가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반면 북한의 유엔 재정 분담률은 아프가니스탄보다 낮은 130위권 수준입니다.

또 세계식량계획(WFP), 식량농업기구(FAO) 등 유엔 기구로부터 해마다 ‘식량지원 필요국’으로 지정되는 등 만성적인 인도주의 문제를 겪는 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유엔 안보리로부터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2006년 대북 결의 1695호, 1718호를 시작으로 2017년 2397호까지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부과된 제재만도 10개가 넘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도 유엔의 지속적인 규탄 대상입니다.

유엔총회와 인권이사회는 지속적으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고 있고, 특히 2014년에는 북한 지도부에 의한 반인도 범죄를 적시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엔은 북한의 ‘악의적 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무대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북한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누리는 ‘혜택’도 있습니다.

주한 미국 부대사를 지낸 마크 토콜라 한미경제연구소 소장은 1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유엔을 떠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유엔 회원국 지위는 북한에 경제적, 외교적 이익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토콜라 전 부대사] “it gives them access to the UN development and humanitarian assistance systems. Plus, I think the big plus for North Korea is the prestige of being at the same table with other sovereign countries….”

회원국 지위는 북한에 유엔 개발원조와 인도주의 지원 접근권을 주며, 무엇보다 다른 주권국과 같은 외교 무대에 설 수 있는 혜택을 준다는 겁니다.

토콜라 전 부대사는 또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를 통해 다른 국가의 외교관 등을 접촉할 수 있는 것도 북한에 큰 이익이라면서, 국제사회 역시 유엔을 통해 폐쇄된 북한과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총회 주요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각국 정상들의 연설인 ‘일반토의’가 오는 21일 시작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아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자고 일찌감치 제안했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