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일 발사한 미사일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이었다고 공개했습니다. 검수사격 시험발사라고 밝혀 실전배치 상태임을 확인하면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조치 철회 수순으로 질주하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국방과학원과 제2경제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의 계획에 따라 30일 지대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검수사격 시험이 진행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들 매체는 “검수사격 시험이 생산 장비되고 있는 화성-12형을 선택검열하고 전반적인 이 무기체계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고 이 무기체계의 정확성과 안정성, 운용 효과성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수사격은 생산 배치된 미사일을 무작위로 골라 품질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를 뜻하는데, 화성-12형이 실전배치돼 있음을 확인한 겁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앞서 30일 북한이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쪽 동해상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이 고각으로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800㎞, 정점고도는 약 2천㎞로 탐지됐습니다.
30∼45도의 정상각도로 쏠 경우 최대 사거리가 4천500∼5천㎞로 추정됐습니다. 북한이 2017년 괌과 알래스카 기지까지 사정권으로 하는 화성-12형의 전력화를 선언한 뒤 실전배치를 사실상 확인한 것은 처음으로, 대미 타격능력을 과시한 겁니다.
북한이 화성-12형을 시험발사한 것은 이번이 7번째입니다.
2017년 5월 4차 발사 당시 이번 발사와 유사하게 정점고도 2천115㎞, 사거리 787㎞로 고각발사가 이뤄졌습니다.
이어 같은 해 8월과 9월엔 평양 순안에서 정상각도로 쏴 2천∼3천㎞ 비행 후 일본 열도를 넘기는 실거리 사격을 두 차례 실시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화성-12형은 2017년 실전배치를 위한 개발이 이미 완료됐다”며 “개발 초기 단계에서 하는 고각발사 시험을 새삼 다시 한 것은 품질검사를 명분으로 한 무력시위”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지금 북한은 긴장을 올려야 하잖아요. 이미 2017년에 정상각도로 실거리 발사에 성공한 화성-12형을 다시 꺼내서 무력시위에 동원한 거죠.”
‘조선중앙통신’은 이와 함께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화성-12형이 발사되는 모습과 함께 미사일 탄두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촬영한 지구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우주에서 촬영한 이들 사진 공개가 재진입 기술의 완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서 지구의 모습이 완전한 원의 형태가 아니므로 대기권 진입 전의 미사일 상승단계에서 찍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기술 완성 여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사진 공개를 통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완성의 난제인 재진입 기술의 진보를 시사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수반했던 중거리급 이상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2017년 11월 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한은 새해 들어 1월 한 달 새 각종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이어 IRBM까지 모두 7차례나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번 IRBM 발사는 특히 북한이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의 철회를 시사한 이후 이를 본격화하는 첫 행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내부가 지금 임계점에 도달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고요 또 하나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트럼프, 바이든 정부를 지나왔지만 전혀 변함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자기들 방식대로 국면을 전환한 거고요. 지금 수순을 밟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검토 중인 모라토리엄 카드는 아직 넘지 않고 있고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레드라인을 넘는 타이밍이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전문가들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체로 하는 군 정찰위성 발사 혹은 모라토리엄 철회 공식 선언과 ICBM 발사와 같은 전략도발이 다음 수순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새해 들어 IRBM 발사까지 쉼 없이 미사일 도발에 나선 것은 괌을 포함한 동아시아 역내를 겨냥한 전술핵 미사일 완성을 일단락 지으면서 향후 전략도발을 위협하는 메시지로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다만 북한의 전략도발 여부에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강경 선회 가능성 등 복잡한 셈법이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바이든 행정부를 가장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ICBM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카드는 손에 쥐고 있을 때 위력이 있는 것이지 그걸 던져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거거든요.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대외정책이 워낙 난맥상이고 전반적으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그 때 바이든 정부는 강경한 정책으로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되거든요.”
전문가들은 북한이 혈맹인 중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IRBM 발사를 강행한 데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앞선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는 데 공동으로 힘쓰기를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했습니다.
한국 국방연구원 출신 김진무 숙명여대 교수는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북한의 한반도 긴장 고조 행위를 오히려 대미 견제에 유리하게 여길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북한 핵 문제나 미사일 문제가 미국 안보에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면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보호해서 미국과의 딜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 미-중 관계 속에서 또 북한이 급기야는 화성-12형, 중장거리 미사일까지 쏠 때 중국이 전혀 나서지 않거나 오히려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쐈다고 보는 거죠.”
한편 북한 매체들은 이번 화성-12형 시험발사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