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 중인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방한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의한 KAL기 납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한국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 국제사회와 공조해 최대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KAL기 납치피해가족회’ 대표인 황인철 씨는 2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7일 토마스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만난 자리에서 50년 넘게 계속된 아픔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습니다.
황 대표는 지난 1969년 발생한 ‘ KAL기 납북사건’ 피해자 황원 씨의 아들입니다.
황 대표는 퀸타나 보고관에게 방한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 KAL 납북 사건’을 특정해 언급해 줄 것을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대표] “마지막 가실 때 기자회견을 하시잖아요. 그 때 반드시 저희 아버지, 또 KAL기 피해자 11인들에 대한 송환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시고,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에게도 송환을 요구하는 권고를 부탁드린다고 했고, 퀸타나 보고관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는 28일 시작되는 제49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북한인권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차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퀸타나 보고관은 방한 마지막 날인 23일 기자회견을 엽니다.
황 대표는 퀸타나 보고관이 한국 통일부와 외교부 차관을 만나 북한 인권 상황을 논의했지만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설명해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퀸타나 보고관은 북한이 납북 사실과 정치범 수용소, 강제 노동 등의 존재 자체를 시종일관 부인하고 유엔 측의 관련 지적에 호응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황 대표는 전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대표]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역사를 부인한다고 해도 사실 북한 당국만이 항공기 납치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송환을 요구해야 하고 또 하다못해 항공기 불법 납치 억제를 위한 협약에 따른 국제사회의 원칙과 질서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 드렸죠.”
황인철 대표는 이어 퀸타나 보고관에게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 3차례, 고위급 회담 40여 차례 있었지만 KAL기 납북자 문제는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 외교 사안을 우선시하며 납북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북한의 범죄 행위를 방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겁니다.
황 대표는 퀸타나 보고관도 이에 공감하며 경각심을 갖겠다고는 했지만 가슴 한편의 답답함은 여전하다고 전했습니다.
KAL기 사건은 당시 강원도 강릉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한에 납치된 사건으로 탑승자 50명 가운데 39명은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황원 씨 등 11명은 53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황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한국 통일부 등 정부가 납북 피해자들에 대해 구제조치를 하지 않아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0년 1월, 북한의 폐쇄성과 휴전 상황을 고려해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 상대라는 특수한 남북관계 속에 정부의 한계가 있다며 이를 각하한 바 있습니다.
황 대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 때마다 납북자 문제를 국가적 주요 과제로 삼는 일본 정부 정책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대표] “일본 정부가 자국민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과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 국민을 포기하는 한국 정부를 보면서 한탄스럽죠. (일본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저희와 같은 가족들을 만나면서 분쟁국과 관계에 있어 새로운 시작점으로 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이벤트를 통해서 그것을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려 한다는 거죠. 남북관계가 진정성 있게 이뤄진 적이 있느냐 이 말이죠.”
퀸타나 보고관은 이번 방한 중에 지난 2020년 9월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와도 면담했습니다.
이래진 씨는 퀸타나 보고관에게 당시 상황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유엔 차원의 노력을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퀸타나 보고관이 국제사회와 공조해 최대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약속했고, 동생 사망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동생 관련 사건의 법원 판결에 항소한 데 대해 크게 놀라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이래진 씨] “대한민국 정부가 항소한 데 대해서 상당히 의아해했고요. 그리고 퀸타나 보고관도 인권변호사라 그런지 법률적인 문제에 상당히 관심을 보였어요. 그리고 사고 당시 상황을 해상 사건이라 본인이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림을 좀 그려서 설명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북한 선박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퀸타나 보고관이 대통령 기록물 지정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며, 한국 헌법에 동생의 사망 경위에 대한 정보 등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면 최대 30년 동안 열람 제한이 생긴다는 점을 설명해줬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지난해 1월 이 씨 유족은 이 씨 사망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11월 한국 법원은 군 기밀을 제외한 사망 경위 등 일부 정보는 유족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해양경찰청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당시 법원에 제출된 항소이유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군사 기밀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해경은 수사 중인 사건의 정보를 공개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이 씨 유가족은 이 씨 피살 후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를 정부에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며 되돌려 보낸 바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