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미국 '전략적 인내 2.0'으로 가나?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회견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길에 북한은 미사일 3발을 발사했습니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고, 미-북 관계는 강대강 대결만 남은 것인지, 한반도 정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지난 22일 있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중이던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현대차 그룹 회장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할 메시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헬로우(Hello)"라고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끝(Period)"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Hello…. Period.”

비슷한 장면은 전날인 21일에도 있었습니다. 미-한 정상회담을 마치고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그가 진심이고 진지한지에 달려있다(It would depend on whether he was sincere and whether it was serious.)”고 대답했습니다.

워싱턴의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한미연구소 래리 닉시 박사는 이같은 언급은 바이든 행정부가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래리 닉시 박사] ”Back to Obama’s strategic patience policy basically doing nothing…”

전략적 인내란 대북 제재와 압박을 유지하면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로 돌아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북 억제를 강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선 이번에 채택된 미-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1년 전 워싱턴에서 발표된 바이든-문재인 정상회담 당시 성명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성명에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빠졌습니다.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여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한반도 비핵화에 필수적’이라는 문구를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내용이 삭제됐습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이번 공동성명에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핵과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확장억제, 미-한 연합군사훈련 확대, 전략자산 전개 등 군사적 조치를 조목조목 포함시켰습니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 선회에 대해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바이든 행정부가 강경책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대니얼 러셀 전 차관보] “Biden administration has same stance I don’t think tough, realistic stance…”

바이든 행정부가 1년 이상 조건없는 대화를 제시했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미사일과 대남 핵 공격까지 위협한 데 따라 대북 군사적 억제를 강화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2018년 채택된 남북한 정상의 판문점 선언과 미-북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사라지면서 미-북 대화 재개 가능성은 희미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미-북 관계는 당분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대응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미 해군분석센터(CAN) 켄 고스 국장은 전망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North Korea continue test, nuclear test and US respond sanction…”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위원장은 내심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중 모종의 대화 제의나 유화 제스처가 나올 것을 기대했을 수 있는데 아무런 언급이나 신호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당분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당분간 강대강 대치 국면이 불가피하고, 북한식 마이 웨이, 핵 능력 고도화를 통한 국방력 강화와 대남, 대미 압박 행보를 계속할 것같습니다.”

남북관계 전망도 어둡습니다.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했던 전임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눈치를 보는 유화적인 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당분간 남북대화가 재개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국제정세 흐름도 좋지 않습니다.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중국간 신냉전 구도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4박5일간 한국과 일본을 순방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또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지지하고 미국-한국-일본 관계를 강화시켰습니다. 동북아에서 중국-북한-러시아 대 미국-한국-일본 대결 구도가 강화되면 한국은 운신의 폭이 작아지고 중국의 협력을 얻기가 힘들어집니다.

결국 향후 1년간은 미-북 또는 남북 관계에서 이렇다 할 대화나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힘들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2-3가지 요인으로 인해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북 대화와 남북대화가 없어도 북한의 핵, 미사일 고도화는 계속된다는 겁니다.

북한은 아직 미 본토를 타격할 ICBM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와 7차 핵실험 등 1-2년간 더 시도하면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회의와 의구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이 아무리 확장억제를 한국에 제공한다고 해도 북한의 핵 능력은 확장억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MD 측면에선 이런 식으로 섞어 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또 다른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서 북한 비핵화를 강조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는 겁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제재와 군사적 조치로 대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와 군사적 조치로 북한을 비핵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켄 고스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 목표는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No tactical strategies actually get North Korea get in the table…”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과 북한 코로나 사태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핵 문제를 이런 식으로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조한범 박사는 지금이라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영변 정도면 핵 능력이 크게 축소됩니다. 저는 지금도 영변 핵시설 폐기를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의 컴비네이션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일본 순방은 몇몇 성과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도 남겼습니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반복할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