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이 불발되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에 맞선 미-한-일 3각 공조가 한층 가시화하는 양상입니다. 다음달 세 나라 외교안보 라인들의 회동이 연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어서 어떤 대응책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한-일 세 나라 외교장관들은 지난 28일 공동성명을 내고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시험을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이번 성명은 특히 세 나라 장관 간 회담 없이 곧바로 발표한 이례적인 사례로,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입니다.
이와 함께 지난 26일 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이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된 상황에서 미-한-일 3각 공조 차원에서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행보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이번 성명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안보 약속을 재확인하는 한편 미-한 그리고 미-일 동맹은 물론 미-한-일 3국 협력을 더욱 진전시킬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회담을 해서 조율해야 성명이 나오는 건데 그것도 없이 나왔다는 얘기는 결국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 왜냐하면 과거엔 북 핵 문제는 북-미관계였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전술핵 개발 본격화를 선언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면서 한국은 이미 북한 전술핵 범위에 들어갔고 일본도 역시 영향이 있거든요. 북 핵 문제 중심이 미국에서 한-일로, 한-미-일로 지금 옮겨온 상황이에요.”
이런 가운데 북한의 추가 도발에 맞선 미-한-일 고위 당국자들간 회동이 다음달 연쇄적으로 이뤄질 전망입니다.
먼저 다음달 3일 미-한-일 북 핵 수석대표들은 서울에서 만나 협의를 갖습니다.
이번 3국 북 핵 수석대표 협의는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열리는 것으로 새로 취임한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미-한, 한-일, 미-한-일 협의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합니다.
미-한-일 3국 차관협의도 이르면 다음달 둘째 주 개최하는 방안이 추진 중입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조현동 외교부 1차관과 회동하는 방식으로, 당초 6월 초 개최가 유력했지만 셔먼 부장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으로 일정이 다소 밀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한-일 3국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차관급 협의는 지난해 1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게 마지막입니다.
세 나라 차관들은 북한의 도발 대응 방안과 함께 인도태평양에서의 공조 확대 방안,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함께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이 다음달 중하순께 워싱턴 DC와 도쿄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과 각각 미-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 나라 외교 당국이 관련 일정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한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질 경우 양국 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한 최근 미-한 정상회담 합의의 후속 이행 상황을 챙길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계기로 냉각된 양국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될지 주목됩니다.
미-한-일 공조는 국방 분야에서도 이뤄집니다.
다음달 10~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한, 미-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입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한국 국방부 장관,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은 회담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조를 논의할 전망입니다.
세 나라 국방장관은 올해 2월 전화회담을 한 바 있으나 대면회담은 2019년 11월 이후 열리지 않아 이번에 성사되면 약 2년 반 만입니다.
다만 한-일 국방장관 회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북한이 핵 위협을 실질화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세 나라의 대북 안보협력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여전하지만 앞으로 3국 차원에서 북 핵에 대한 확장억제력 강화를 구체화하는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실질적인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의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은 있어야 하고 또 가능성도 상당히 높지 않느냐, 3국간 군사 연습으로 진행되는 것은 중국 차원에서 상당한 반발할 수 있겠지만 방어용 기제로서의 확장억제 전략 협의체의 3국간의 기구화 같은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미-한-일 ‘릴레이 외교'는 다음달 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절정에 이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 정부도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자회의이지만 윤 대통령 취임과 북 핵 위기를 계기로 미-한-일 또는 한-일 정상회담이 약식으로라도 열릴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한-일이 공조를 강화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편들기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할 방안을 찾긴 힘든 상황이라며 현 시점에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한다든지 아니면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쪽으로는 한-미-일이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실질적인 핵을 억제하는 능력 향상 측면에서 한-미-일이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저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미-한-일 3각 공조 강화가 북-중-러의 밀착을 한층 자극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대립 구도가 단순한 진영 구도가 아니라 자국 이익을 위한 복잡한 셈법 속에서 작동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에도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북한을 옹호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와 함께 한국 또한 자신들이 영향권 안에 두려는 행보를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한-미-일 3각 협력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고 판단되는 또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국가라고 생각되는 한국에 대해서 더 협력을 강화하면서 가능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더 긴밀해지는 것을 억제하려는 그런 대응도 고려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대북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부각되고 있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 현상이 기존의 역사 갈등에 더해져 한-일 관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