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해상에서 중국 선박의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다른 중국 선박과 고유 식별번호가 겹쳐 신분을 세탁한 북한 선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다른 나라 선박의 식별번호를 도용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선박이 또다시 포착된 곳은 최근 중국 깃발을 단 선박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 북한 서해상입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중국 선적의 ‘산허’호는 현지 시각 26일 현재 북한 서해 초도에서 서쪽으로 약 26km 떨어진 지점에서 위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 이 선박 바로 옆에서는 선적 미상의 ‘터그’선 즉 예인선이 위성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마린트래픽은 선박의 고유 송신기에서 포착된 신호를 수신하거나 위성을 통해 전달된 선박의 위치 정보를 토대로 선박을 식별합니다.
송신기와 위성 자료를 통해 2척의 선박이 포착됐을 수 있지만, 반대로 선박 한 척이 보내는 두 가지 정보를 마린트래픽이 한 지도에 표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후자라면 산허호는 예인선입니다.
현재 산허호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는 북한 선박 ‘수송’호가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VOA는 최근 중국 선박들이 잇따라 북한 서해와 대동강 일대에 출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중국 화물선 ‘순창78’호가 남포 일대에 잠시 위치를 노출했으며 17일에는 ‘장선푸6988’호가 발견됐습니다. 또 21일에는 중국 어선으로 추정되는 ‘쑤치위03453’호가 북한 서해와 대동강이 맞닿은 남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이유로 2020년 중순부터 다른 나라 깃발을 단 선박의 입항을 엄격히 통제해 온 만큼, 중국 선박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례적인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추가로 또 다른 중국 선박이 북한 해역을 항해 중인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산허호가 송신 중인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가 현재 중국해역에 떠 있는 다른 중국 선박의 MMSI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산허호가 보내고 있는 MMSI는 현재 중국 랴오닝성 후루다오시의 한 호수에 떠 있는 ‘비하이’호와 일치합니다.
9개의 숫자로 구성된 MMSI는 각 선박에 부여되는 고유번호로서, 같은 번호의 선박 2척이 존재한다는 건 둘 중 한 척이 잘못된 MMSI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 해역에 떠 있는 산허호의 MMSI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앞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되거나 제재 위반으로 추적당하는 자국 선박의 MMSI를 조작한 전례가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올해 3월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대북제재 위반 핵심 선박으로 지목된 ‘뉴콘크’호가 2020년 벨리즈 선적인 ‘F.론라인’호의 MMSI를 이용해 운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밖에 대북제재 위반 행위에 연루돼 유엔의 추적을 받아온 ‘수블릭’호와 ‘유니카’ 호도 각각 ‘하이주168’호와 ‘리톤’호의 MMSI 정보로 운항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잇따른 위반 행위를 고려할 때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산허호 역시 중국 선박의 MMSI를 도용한 북한 선박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문가패널은 북한 선박의 MMSI 조작과 관련해 “선박의 등록국이 MMSI의 부정 사용이 의심되는 선박을 식별하고 조사할 수 있는 필수 도구를 보유할 것과 이에 대한 결과를 해양 당국, 그리고 전문가패널과 공유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