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배 변호인 “북한에 소장 송달할 창구 소진…소송 진전돼야”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장 전달에 실패한 케네스 배 씨의 변호인이 다음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북한에 법원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실상 그렇게 할 창구가 없는 현실을 참작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케네스 배 씨 측 변호인은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2차 현황 보고서’에서 소장이 아직 북한에 전달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2012년 11월 억류됐다 2년 만에 풀려난 배 씨와 배 씨의 가족 등은 2020년 8월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미국 워싱턴 DC에서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우편물을 배송해 온 국제 우편물 서비스 업체 ‘DHL’이 2020년부터 유엔이 아니거나,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한 북한 내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배 씨 측은 2년 넘게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미 연방법원은 최초 소송 제기일 120일 이내에 피고에게 소장을 전달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배 씨 측은 지난 2020년 최초 소송 제기 이후 북한에 소장이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를 재판부에 설명하며 이 기한을 늘려왔습니다.

배 씨 측은 이번 현황 보고서에서 해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때 원고가 밟아야 하는 모든 절차를 취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DHL’을 통한 우편물 운송이 불가능해지자 미국 우체국을 이용해 소장을 송달했고, 더 나아가 미국 국무부에 ‘외교적 경로’를 활용해 소장을 전달해줄 것을 이미 요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우체국을 통해 보낸 우편물은 1년 넘게 수신 확인이 안 되고, 국무부도 ‘외교적 경로’ 이용 가능성에 대해 뚜렷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배 씨 측은 “현시점 원고는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재판부가 소장 미전달을 계속 문제 삼거나 원고에게 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한 소장 전달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는 테러 희생자들이 특정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 미 의회의 의도를 훼손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배 씨 측은 재판부가 소장 전달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다 밟았다는 점을 인정해 궐석 판결, 즉 원고의 의견만을 바탕으로 재판부가 결정을 내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이와는 별도로 국무부가 외교적 경로인 스웨덴 정부에 해당 소장 전달을 의뢰할 것과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소장을 송부하도록 명령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가 배 씨 측의 이런 요청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합니다.

만약 이를 받아들일 경우 북한에 대한 소장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소송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배 씨와 비슷한 시기 북한에 소송을 제기한 납북 피해자 김동식 목사의 유족들도 아직 북한 외무성에 소장을 보내지 못했으며, 지난 5월 북한을 상대로 약 40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한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와 희생자 상속인 등도 같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재판부가 배 씨의 노력을 참작해 소송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허가한다면, 김동식 목사의 유족과 적군파 테러 피해자는 물론 이후 대북 소송인 등은 평양으로 소장 전달에 실패하더라도 ‘궐석 판결’을 신청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