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사실상 핵 선제공격을 열어 놓은 핵 무력 법령을 채택한 데 대해 한국 내에선 긴장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공격에 핵으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15일 ‘북한의 공격적 핵 교리 법제화와 북 핵 대응의 질적 전환’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이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핵 무력정책 법령에 대해 남한 전역이 북한 핵무기의 가장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는 점을 직시해 ‘북 핵 인식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핵 무력 법령을 통해 핵무기를 억제수단에서 선제공격 수단으로 변화시켰다며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능력은 아직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반면 군사분계선 이남을 대상으로 하는 전술핵무기의 경우 사실상 실전배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선제공격과 남한을 향한 전술핵 위협이 현재화됐다 이게 제 판단이고요. 전술핵 문제는 이미 실전배치에 들어갔다는 거죠. KN-23,24를 1월에 검열사격, 검수사격 했고 그 다음에 전방부대 작전계획까지 수정했다면 전방 운용을 지금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결국 북 핵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인식으로 바꿔야 됩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우려되는 점은 북한이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라며 “또한 미국을 의미하는 ‘적대적인 다른 핵 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핵무기 사용 대상을 남한을 포함해 불특정 다수의 국가로 확장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핵 무력 법령에 따르면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해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다분히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나선 한국을 겨냥한 내용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해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의 선제 핵공격 가능성에 우선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강경하고도 실효적인 억지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16일 미국에서 열리는 미한 외교·국방(2+2)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EDSCG 회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한 EDSCG는 제3국이 핵 공격을 당할 위험에 놓일 때 미국이 자신을 위한 핵 피격 가능성에 대한 억제력을 확장해 해당국에 핵무기 체계 등을 제공하는 ‘확장억제’ 방안을 논의하는 미한간 협의체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미한안보협의회(SCM) 등의 공동성명에 ‘핵우산’과 ‘재래식 타격능력’ ‘미사일 방어능력’ 등 확장억제에 관한 표현들을 담으며 한국 측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해왔습니다.
한국에선 그러나 북한의 핵 위협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고 이번 EDSCG를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옵니다.
실행 방법이 불분명한 선언적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사항을 문서로 작성하는 등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금 북한은 30~6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선 현재 미국이 본토에 보관하고 있는 130여개의 전술핵무기 중 수십개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양욱 부연구위원] “전술핵을 한반도에서 의미있게 전개하기 위해선 30분 이내에 투입을 해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유일한 전술핵폭탄인 B61 핵폭탄을 한반도 내에 배치해야 그래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도 북한의 이번 핵 무력 법령 채택으로 재래식 무기에서 열세인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정 센터장은 14일 발행된 '세종논평'에서 이번 미한 EDSCG에서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이 상응한 반격을 약속하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북한을 확실하게 억제하려면 북한이 전술핵이든 전략핵이든 사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약속을 미국이 분명하게 보여야 하고요, 그런 메시지를 낸다는 것은 그런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미국과 핵 공유정책을 펴고 있고 핵계획그룹을 공동 운용하면서 핵무기 사용에 대한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를 보이고 있다며 미한도 평시 협의체 수준의 차관급 EDSCG에 그칠 게 아니라 한국형 핵계획그룹을 만들고 한국형 핵 공유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범철 한국 국방부 차관은 EDSCG 참석차 지난 13일 워싱턴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이번 협의체 목적에 대해 “미국의 확장억제가 실제로 잘 작동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종섭 한국 국방부 장관은 14일 한국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방안과 관련해 “정보 공유와 공동기획, 위기 협의, 전략자산 전개, 연합연습, 전략적 소통 등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왔고 이번 주 열리는 EDSCG에서도 그러한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관은 그러나 나토와 유사한 ‘핵 공유’에 관해선 미한 간 현재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
이 장관은 또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선제공격 위협에 대응해 미한 맞춤형억제전략(TDS)을 9년 만에 개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한 TDS는 북한 지도부 특성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고려해 한반도 상황에 맞게 최적화한 미한 공동의 억제전략입니다.
이 장관은 “각 상황에서 미한이 어떻게 할 것인지 전략자산운용연습(TTX) 등을 통해 논의한 내용이 TDS에 구체적으로 기술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음주 후반 부산에 입항해 이달 말 동해에서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하는 계획이 미한 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핵항모가 한국 작전구역(KTO)에서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2017년 11월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3척이 동시에 동해를 찾은 후 약 5년 만입니다.
이번 기항과 연합훈련은 지난 5월 미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문제는 7차 핵실험 준비 움직임과 핵 무력 법령 채택 등 북한 핵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EDSCG에서도 집중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