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유엔서 북한과 설전 격화…침묵했던 한국 태도 변화 주목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김인철 서기관이 18일 한국, 일본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유엔총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 격한 설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비판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한국 외교관들이 올해는 ‘한국전쟁’까지 거론하며 북한의 과거 행동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18일 재개된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에서는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김인철 서기관이 먼저 포문을 열었습니다.

각국의 토의 내용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시간이 되자 김 서기관이 반박권(Right of reply)을 요청해 한국과 일본을 직접 겨냥했습니다.

앞서 한국과 일본은 ‘핵무기’를 주제로 열린 이날 오전 토의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최근 잇따르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하게 규탄했었습니다.

김 서기관은 한국을 유엔 공식 국명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The Republic of Korea)’ 대신 남한 즉,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로 부르며, 한국의 대북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녹취: 김인철 서기관] “The historical facts clearly show that the vicious cycle of the strain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a fallout of anti-DPRK collaboration of aggressive nature between the US and South Korea. The sustained hostile policy of South Korea is one of the major causes of the aggravating situation.”

“역사적 사실은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지는 악순환이 미국과 한국의 반북 공조의 여파라는 점을 보여주며, 한국의 지속적인 적대 정책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입니다.

아울러 미한 연합훈련이 한반도 상황과 역내 평화와 안정에 악영향을 불러오는 ‘근본 원인(root cause)’이라고 김 서기관은 주장했습니다.

또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본의 장거리 타격과 미사일 요격 역량 획득 시도, 미국과의 핵무기 공유 논의 등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한국은 곧바로 마이크를 넘겨받아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북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이현구 1등서기관이 18일 북한의 발언에 반박권을 사용해 대응하고 있다.

유엔주재 한국 대표부 이현구 1등서기관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자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어떤 나라가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어떤 나라가 계속 도발과 적대적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을 비판했습니다.

[녹취: 이현구 서기관] “Mr. Chair, speaking of the root cause of the problem, everyone in this room knows which country started the Korean War and which country continues to go down the path of provocations and hostile behaviors. I would like to draw your attention to removeable truth that it is that one country that continues to blatantly pursue its military ambitions by launching over 40 missiles this year alone, not to mention its new legislation to lower the threshold of using nuclear weapons.”

이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에 주목하고 싶다”면서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추는 새 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나라는 올해에만 40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노골적으로 군사적 야망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서기관은 “한국은 북한이 여러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모든 불법 핵 활동을 끝낼 것과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김인철 서기관은 2차 반박권을 사용하며 재반박에 나섰습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이 올해 8월부터 연합 군사훈련을 강화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군사 활동은 이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미한 연합훈련이 정상화된 8월부터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김 서기관은 8월 이전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해선 특별한 배경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올해 3월과 5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등 8월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일본도 북한 주장에 반박권을 사용해 “일본은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는 군사 강국이 되지 않는다는 방위 지향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김 서기관이 ‘일본 정치권에서 미국과의 핵무기 공유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비핵 3원칙에 따라 핵 무기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고, 핵 공유를 논의할 의사도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3일 시작된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에선 이처럼 한국, 일본과 북한의 설전 상황이 날로 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진 북한과 일본 대표, 혹은 북한과 유럽연합(EU) 나라들 간의 설전이 주를 이뤘는데, 올해는 한국이 대북 공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17일 김성훈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참사관이 반박권을 활용해 북한을 규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7일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의 김성훈 참사관은 북한 김인철 서기관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지난 30년간 북한의 약속 불이행 사례를 조목조목 나열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녹취: 김성훈 참사관] “The nuclear issue surfaced in the early 1990s right after the joint statement on the denucleariz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between the and DPRK. However, the DPRK avoided the IAEA inspection and demanded a suspension of joint military exercises for inspection, which we did…”

김 참사관은 “북한 핵 문제는 1990년 대 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직후 불거졌다”며 “당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부하면서 (미한)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1993년부터 2012년까지 북한이 미국 등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열거한 뒤 매번 북한이 보상을 바라는 방식으로 약속을 깨면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김 참사관은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국 등은 북한과 합의를 맺을 때마다 중유 등 수많은 장려책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경수로까지 만들어주려 했지만 “이런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고, 늘 대화는 이런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침략하고, 지속적으로 협정을 속이고 깨며, 적대적인 의도를 행동과 말로 내보이는 나라가 있다면, 그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집단적인 방식의 방어적이고 신중한 대응은 불가피하다”고 김 참사관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성훈 참사관은 지난해 열린 1위원회 회의에도 한국 대표로서 몇 차례 모습을 드러냈지만, 북한의 강경한 발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 2번의 반박권을 활용해 대북 규탄에 나선 일본 대표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북한의 주장에 적극 반박하는 것은 물론 공개적으로 북한의 과거 잘못까지 끄집어내면서 강도 높은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1위원회는 18일 핵무기 관련 논의를 끝내고 다음 주제인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토의를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해 각국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또 북한이 어떤 논리로 반박할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