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한 쌀의 품종이 ‘장립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이 한반도에서 선호도가 낮은 장립종 쌀을 수입한 건 이례적인데, 식량난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양이 많은 품종을 선택한 것인지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10월과 11월 중국에서 장립종 쌀을 대거 수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VOA가 중국 해관총서의 ‘북중 무역’의 세부 내용을 분석한 결과 북한은 10월과 11월 총 4만1천23t, 총 1천737만 달러어치의 장립종 쌀, 즉 길이가 6mm를 초과하는 정미를 구매했습니다.
장립미 혹은 안남미로 불리는 장립종 쌀은 찰기가 없고 모양이 얇고 긴 품종입니다. 주로 인도와 파키스탄, 태국, 중국 남부지방 등에서 생산, 소비되며, 한반도와 동북아 일대에선 선호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앞서 VOA는 중국 해관총서의 ‘북중 무역’ 세부자료를 분석해 10월에 이어 11월에도 북한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은 쌀이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품종을 확인한 결과 10월에 구매한 쌀은 전량이 장립종이었으며, 11월에도 전체 쌀 수입량 3만172t 중 장립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1%에 달했습니다.
북한은 2018년 7월부터 줄곧 중국에서 길이 6mm 이하의 쌀, 즉 단립종 품목만을 수입해 왔습니다.
2018년 7월 이전에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한 쌀은 모두 ‘기타’ 쌀 제품으로 분류돼 길이가 특정되지 않았지만, 북한 주민들이 통상 단립종 쌀을 섭취해 온 점으로 볼 때 여기에 장립종 쌀이 대거 포함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북한이 중국에서 장립종 쌀을 대규모로 사들인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장립종 쌀은 단립종 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11월 수입한 장립종 쌀 수입액을 수입량으로 나눠보면 장립종 쌀 1kg 당 가격은 미화 41센트로, 단립종 쌀 1kg 당 가격인 49센트에 비해 약 8센트 저렴합니다.
지난달 북한은 단립종 대신 장립종 쌀을 선택하면서 약 200만 달러를 아낀 셈입니다. 혹은 같은 값으로 4만 t의 쌀을 더 수입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북한의 쌀 수입 규모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점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북한은 올해 3월과 4월, 7월, 10월, 11월 중국산 쌀을 수입했는데, 이 기간 들여온 단립종과 장립종 쌀의 총량은 5만7천522t입니다.
이는 쌀 수입이 급증했던 2019년의 16만t에는 못 미치지만 2017년 3만5천t과 2018년 4만3천t, 2020년 1천t에 비해선 많은 양입니다.
아직 12월 수입량이 더해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올해 북한의 쌀 수입 규모는 지금의 5만t 대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이 장립종 쌀을 비롯해 전반적인 대중 쌀 수입을 늘린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최근 몇 달간 북한 내 식량난 가능성이 제기되고 북한 내 곡물 가격이 상승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온 사실에 주목하며, 현재 북한이 식량 부족 상황에 처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Koreans especially don't like the long grain rice. US has tried to export long grain rice to them, they don't like it basically. So clearly the Koreans do not like the long grain rice. And so if it's coming in it's because it's cheap. And that's a bad sign, of course. If the government is required to give out a certain amount of rice as ration, obviously they'd prefer to give a cheaper rice and do it that way. So that may be what's probably happening.”
브라운 교수는 “한반도는 장립종 쌀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과거 한국에 장립종 쌀 수출을 추진했지만 한국인들의 기호에 맞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따라서 장립종 쌀을 선호하지 않는 북한에 해당 품종이 들어가는 건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물론 좋은 징조는 아니다”라고 브라운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 정권이 일정 부분의 쌀을 주민들에게 배급해야 한다면 분명 더 싼 쌀을 나눠 주길 원할 것”이라며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 가능성은 최근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사안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7월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분기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했습니다.
FAO는 북한 주민 대다수가 낮은 수준의 식량 섭취로 고통받고 있으며,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경제적 제약이 늘어난 북한의 올해 농업 생산량이 평균 이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북한의 식량 안보 상황은 계속 취약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VOA는 지난 8월 선박 관계자들에게 배포된 선박 수배 공고문을 통해 북한이 인도산 장립종 쌀 1만t의 수입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바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주재 북한 대사관 관계자가 인도의 민간 경제단체인 ‘인도 국제사업회의소’에 쌀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도 국제사업회의소의 만프릿 싱 소장은 VOA에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쌀 기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북한)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는 홍수가 농작물 대부분을 파괴한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