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관계 올해도 대치국면 지속될 듯…북한, 경제 위기로 담판 나설 가능성 배제 못해”

북한이 지난해 4월 평양 열병식에서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했다.

올해 미북관계는 지난해와 유사하게 대화 보다는 대치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북한 경제난이 어느 정도까지 심화될지에 따라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에 나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정성윤 연구위원은 최근 낸 ‘2023년 북미관계 전망’ 보고서에서 “2023년은 2022년과 유사한 정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서 2023년은 미북 간 대화 국면이 형성되지 않고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억제력 강화 조치가 반복되는 상황이 유력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의 최우선 전략 목표는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최대한 빨리 달성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이러한 목표를 순조롭고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의 심각한 군사적 갈등을 가능하면 회피하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연구위원은 지난달 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고 대남 공세에 집중한 것도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라면서, 다만 북한의 대미 인식 변화가 아닌 전략적 필요에 따른 행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이 올해 미국과의 대화를 정책 선택지에서 제외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정성윤 연구위원] “분노적 결기가 대미관계에 여전히 깊숙히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당분간 대화를 인위적으로 안 하려고 할 것이다, 대화를 섣불리 했다가 또 김정은 위원장이 내상을 입게 되는 또는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 발생될 여지를 미연에 차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마 주변 참모들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김정은 스스로가 당분간 안 나오려고 할 거다.”

정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확전 우세와 억제의 신뢰성만을 보여주는 선에서 정세 불안정성 차단에 주력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미 공군 B-52H 전략폭격기(가운데)와 C-17 수송기(오른쪽 위), F-22 전투기가 지난달 20일 한반도 상공에서 연합훈련에 참가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미북 대화로 이어지곤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을 포함한 신형 탄도미사일을 수십 차례 발사해도 미국이 요지부동이라는 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ICBM의 정상각도 발사를 통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를 증명하는 수준의 도발이 아니라면 미국으로선 설령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북한에 새로운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예전 같았으면 작년처럼 신형 미사일 발사하고 이랬을 때 미국에서 움직여야 되는 건데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고 미국을 겨냥해서 미국 본토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도발을 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고, 핵실험도 북한이 했을 경우에 미국으로선 새로운 게 없어요.”

김 교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순위는 패권경쟁이 진행 중인 중국 문제가 압도적으로 앞선 상황이고 실익이 보이지 않는 북 핵 문제는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 있는 게 현실이라며 올해도 이런 기조가 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미북 양측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해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틀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관측입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원하는 협상 틀은 2018년과 2019년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미북 정상회담에서 다뤄졌던 의제들 즉 북한의 핵 활동 유예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1차적으로 교환하는 식의 단계적이면서도 실익이 분명한 협상틀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북한도 현 상황에서 미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장기전 차원에서 도발과 공세를 한국에 집중하면서 남남분열을 유도하고 미한 동맹을 흔들려는 시도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 협박할 수 있는 수단보다는 한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협박할 수단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선 한국을 타깃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거죠. 여기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한국의 기를 꺾고 한미 간 의견차이가 발생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북한 경제난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은 올해 북한 대미정책에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박진 한국 외교장관이 지난 6월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여전히 취약지대로 남아 있는 북한 입장에선 식량 문제 등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 위기가 올해 중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내부 모순이 폭발하기 전에 가급적 빨리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과 최대한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려고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ICBM 완성과 같은 기술적 성취는 조기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경제 위기가 버티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를 경우 전격적으로 미국과의 담판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경제가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라고 판단하면 자신들이 여태까지 개발해 놓고 고도화한 핵 능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7차 핵실험을 하고 스스로 핵 지위 부여한 후에 담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내구성이 핵심이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당 전원회의 결과에서 이례적으로 2022년 부문별 성과와 2023년 목표 제시 등 경제 관련 언급이 거의 없었던 점을 주목하며 북한 경제의 심각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미중 경쟁구도 속에서 북중 관계가 강화됐지만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그랬듯이 북한 경제 위기 때 중국의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을 미국에서 찾으려 한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당 전원회의 참고자료’ 보고서를 통해 “예년에 비해 경제 민생 관련 언급 자체가 대폭 줄고 구체적 내용도 없었고 반면 당적 통제 강화와 대규모 주민 노력 동원행사 등을 예고했다”며 “경제와 민생에서는 가시적 성과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안도 없음을 사실상 자인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