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김정은 딸 후계 논란, 북한이 봉건 왕조국가에 가깝다는 사실 확인” 

  • 최원기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성-17형 ICBM 발사를 현지 지도했다며 부인 리설주, 딸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지난해 11월19일 공개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권력세습 여부를 놓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승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고, 시사점은 무엇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74년 2월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한 겁니다.

북한의 기록영화 ‘선군 태양’의 한 대목입니다.

[녹취: 선군태양] “1974년 2월 13일에 열린 역사적인 당 중앙위원회 제 5기 제 8차 전원회의에서는 영명하신 그이를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우리 당과 혁명이 높이 받들어 모셨습니다.”

당시 62세였던 김일성 주석은 이미 26년간 북한을 통치해 왔습니다.

그동안 김 주석은 북한의 건국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 복구를 마치고 노년기에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과거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김일성 주석이 아들을 후계자로 내정한 것은 중국의 영향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3년 전인 1971년 중국에서는 마오쩌뚱의 후계자였던 린뱌오(임표)가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발각돼 소련으로 망명하던 중 추락사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 김 주석이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면 정치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That create some stability because you know who is your successor.”

후계자 지명 당시 김정일은 나이 32살로, 이미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 비서를 맡고 있었습니다.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노동당을 장악하고 자신만의 현지 지도를 시작했습니다. 또 1974년에는 사상, 기술, 문화를 혁신하자는 3대 혁명 소조 운동도 벌였습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정일 권력승계의 최대 장애물은 계모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이었습니다.

김성애는 북한의 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 의장이었고, 김평일은 김일성을 그대로 빼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일 아버지 김일성이 김평일을 후계자로 지명할 경우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정일이 계모 김성애와 김평일을 겨냥해 이른바 “곁가지” 투쟁을 벌여 이들을 몰아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그 때 김일성이 김평일로 마음이 가는 후계구도가 있을 때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이 권총을 빼들고 장자승계 원칙을 강조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구요.”

결국 권력세습 투쟁에서 밀려난 김평일은 1979년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발령난 이후 30년 이상 유럽을 떠돌았습니다.

1990년에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위원장은 김일성), 1991년 인민군 최고사령관, 1993년 국방위원장이 돼 군부와 국가 권력을 사실상 모두 장악했습니다.

1994년 7월 4일 46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습니다.

이 무렵 북한에서는 수십만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3년을 ‘유훈통치’ 기간으로 설정하고 1998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승계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8월입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석 달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었습니다.

그 해 연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김정일 위원장은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듬해 1월부터 북한 당국은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보급하며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발걸음]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2월의 정기, 척척척…”

이어 2월 16일 북한은 관영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백두의 혈통 계승’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은 이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 작업의 신호로 봤습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당시 27살이었던 김정은은 12월 30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고, 이듬해 4월에는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취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이 이뤄졌지만 두 차례에 걸친 권력승계 과정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일의 경우 20년 이상 권력승계를 준비해 권력 기반이 탄탄했던 반면 김정은의 경우 후계자 내정 이후 불과 2년만에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김정은은 군부와 노동당 등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채 권력의 정점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실질적인 권력은 김정은이 아니라 매부인 장성택이 쥐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마이클 헤이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장성택이 북한의 실세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헤이든] “ May be Chang is real power, both his uncle and aunt are power behind throne.”

하지만 김정은은 2012년 7월 군부 실세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한 데 이어 이듬해 12월에는 매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일종의 `궁정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공고화했습니다.

다시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정은은 2009년에 등장했는데 2011년에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초반에 권력 기반이 불안했죠, 그래서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고 장성택을 2013년 12월에 처형하고 그 다음에 이복형 김정남을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

2년 밖에 안되는 권력 준비 기간과 그로 인한 친인척 처형같은 정치적 혼란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신적 상처가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김 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데리고 나오는 것도 가급적 이른 시기에 딸을 후계자로 내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만 8살 때였다며, 김주애가 이미 후계자로 내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실장] “1992년 1월 8일 김정은이 만8세가 됐을 때 김정은을 찬양하는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김정은과 김정일 앞에서 공연됐습니다.그리고 그 때부터 김정일이 ‘앞으로 내 후계자는 정은이야’라고 소수의 측근들에게 계속 얘기를 했고요.”

후계자 설이 제기된 김주애는 2013년생으로 올해 10살입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도 아직 채 40살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입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김주애 후계자 설은 아직 너무 이르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해도 김주애가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10살 소녀의 등장을 계기로 권력승계 논란이 이는 북한체제는 현대적인 국가가 아닌 봉건 왕조국가에 가깝다는 사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