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웜비어 부모] “북한 자산 계속 추적 중…유럽 의회와 테러지원국 지정 논의”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군의 부모 프레드 웜비어 씨와 신디 웜비어 씨가 20일 VOA와 인터뷰했다.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북한 자산 추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말 제정된 ‘오토 웜비어법’의 의회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은 웜비어 부모는 20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압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도록 하기 위해 유럽 의회와 협력하고 있다는 점도 밝히며 한국도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VOA를 찾은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와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를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먼저 이번 워싱턴 방문 목적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웜비어 모친)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아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자주 워싱턴 DC에 옵니다. 이번에는 여러 상원의원들을 만났고요. 또 하원의원들과의 면담도 예정돼 있습니다. VOA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웜비어 부친) 일단 우리가 이번에 워싱턴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제정된 ‘오토 웜비어 법’, 정확히 말하면 ‘오토 웜비어 북한 검열감시법’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왔습니다. 이 법은 VOA와 같은 기관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유입하는 것을 지원하는 아주 중요한 법입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외부의 모든 것들을 증오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들은 제 아들을 증오하라고 가르칩니다. 북한 밖의 모든 것들을 증오하라고 시킵니다. 여기에 우리가 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북한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저희는 오늘 이곳에서 VOA가 대북 정보 유입을 위해 그동안 어떤 일을 해 왔고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를 듣고 고무됐습니다.

기자) ‘오토 웜비어법’ 제정 후 의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행에 어떤 진전이 있던가요?

웜비어 모친) 네. ‘오토 웜비어법’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첫 방문입니다. 저희에게는 이번 방문이 과거 대북 정보 유입을 위해 미국 정부가 어떤 일을 했고 또 미래에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소개받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VOA가 북한 주민을 위해 하고 있는 임무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 특히 북한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영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훌륭한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군의 모친 신디 웜비어 씨가 20일 VOA와 인터뷰했다.

기자) 아들의 죽음에 책임을 묻기 위해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내서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계 곳곳에 숨겨진 북한 자금을 찾아 확보하는 것을 임무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계획들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웜비어 부친) 언제나 그 부분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20일) 오후에는 미 재무부에서 담당자들과 면담합니다. 북한 자산을 확보하는 데 재무부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자산을 확보하고 나면 이제 정부와 별개인 사법부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현재 공개하기는 이른 사안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 보도할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희는 그것에 대해 매우 흥분돼 있습니다. 또 미국 의회가 ‘오토 웜비어법’과 관련해 기울이는 많은 노력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한을 변화시킬 방법을 늘 찾고 있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군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 씨가 20일 VOA와 인터뷰했다.

기자) 그동안 북한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조해 오셨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웜비어 부친) 한국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은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을 위협하는 테러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들 선박이 한국 해역을 침범하는 등 불법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연대해서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대항하면 북한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웜비어 모친) 그리고 지금 북한을 변화시킬 훌륭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요. 한국 정부가 북한을 조명하는 데 있어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 지 모릅니다. 또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길을 열었어요. 미국과 한국, 일본이 함께 군사훈련을 시작했고요. 이전에는 이런 협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현상들이 제게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이들 세 나라의 협력은 너무 중요합니다.

웜비어 부친) 또한 북한에 국제법, 법치주의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희는 2년 전에 독일을 방문해서 그 곳에 있는 북한 대사관 건물에서 이뤄지고 있는 불법적인 행위를 적발했습니다.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네바 협약, 유럽의회 법, 또 독일 법에도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법률팀을 고용했고 그 불법 사업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2년 넘는 시간일 걸렸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해외 곳곳에서 저지르는 불법 행위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럼 그 정권은 생존의 방법을 잃게 됩니다. 북한은 러시아로 불법 노동자를 보내고 그 보수를 러시아 은행을 통해 받습니다. 이런 은행들도 모두 제재해야 합니다.

기자) 국가 측면 외에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웜비어 모친) 미국 외에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각국의 시스템이 이런 소송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주길 희망합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에서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고 준비하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희 부부가 어떻게 했는지, 여기까지 올 수 있는지 전해줬습니다. 이런 노력들, 그러니까 북한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웜비어 부친) 또 중요한 부분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 부부는 그동안 미국 상하원을 상대로 테러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재지정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펼쳤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돼 소송을 할 수 있었고요. 이제 저희는 유럽의회와 협력하고 있는데요.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유럽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도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진심으로 촉구하고 싶습니다.

북한에 억류되기 전 생전의 오토 웜비어 군과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 사진제공=웜비어 가족.

기자)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토 웜비어 재단’을 통해 탈북민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셨습니다. 이서현 씨가 초대 수혜자였고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장학금을 수여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웜비어 모친) 탈북자 두 명 정도가 저희에게 관련해서 연락을 줬습니다.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아주 좋은 일이에요. 저는 미국에 도착한 탈북민들이 이곳에서 아주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더 많은 탈북민들이 미국에 오길 희망하고 그들을 격려하며 돕고 싶어요. 북한이 국경을 봉쇄해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 김정은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십니까?

웜비어 부친) 아니요. 그는 두려움 속에 사는 겁쟁이로 실패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패배자에게 무슨 메시지가 있겠습니까? 왜 제가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웜비어 모친)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군의 부모 프레드 웜비어 씨와 신디 웜비어 씨가 20일 VOA 안소영 기자와 인터뷰했다.

지금까지 오토 웜비어의 부모 프레드 웜비어 씨와 신디 웜비어 씨로부터 ‘오토 웜비어법’ 이행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