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렸지만 엔진 고장으로 실패했습니다. 북한이 추가 발사 시도를 예고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라고 규탄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31일 오전 6시 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지만 백령도 서쪽 먼바다 상공을 통과한 뒤 어청도 서방 200여km 해상에 낙하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발사 한 지 2시간 30여분 만에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했음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발사했다”면서 “ ‘천리마-1’형은 정상비행하던 중 1계단 분리 후 2계단 발동기 즉 엔진의 시동 비정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서해에 추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은 “‘천리마-1’형에 도입된 신형 발동기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데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원인 해명에 착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결함을 조사 해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며 여러 가지 부분시험들을 거쳐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위성을 탑재한 발사체를 쏜 것은 1998년 8월 광명성 1호 위성을 시작으로 이번이 6번째입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북한의 위성 발사 시도에 대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들은 “이번 발사는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임을 강조하고 이를 규탄했습니다.
한국 군은 북한이 쏜 우주발사체 일부가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낙하한 것으로 파악하고 낙하지점에서 발사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부유물을 인양했습니다.
인양한 부유물은 1단 로켓과 2단 로켓 사이 원통형 연결단인 것으로 군은 추정했습니다.
합참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연결단 표면에 ‘점검문-13(기구조립)’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또 낙하 시 또는 비행 중 충격에 파손된 듯 연결단 하단이 찌그러진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은 나머지 잔해물에 대해서도 수색과 인양 작업을 벌인 뒤 수거물들을 토대로 전반적인 성능과 외국 부품 사용 여부, 기술 수준 등을 확인할 예정입니다.
한국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 우주발사체가 발사 초기 추락한 데 대해 신형 우주발사체의 기술적 결함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측 보도에 따르면 우주발사체 1단은 정상분리됐지만 2단 로켓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신형 엔진체계의 불완전성과 연료특성의 불안정성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박사는 북한이 화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백두엔진을 토대로 한 신형 엔진을 쓴 것으로 추정하면서, 1단과는 달리 진공상태인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고공엔진인 2단 엔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박사는 지상에서의 2단 엔진 시험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춘근 박사] “진공 중을 비행하는 고공엔진은 지상에서 모사하기가 어려워요. 연소특성 파악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연소 시험장비 밑에 진공챔버를 달아서 진공을 뽑으면서 연소 시험을 하거든요. 우리도 그런 첨단 설비가 있죠. 북한은 그게 없어요.”
한국 정부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2차 발사를 공언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첫 발사 기한으로 예고한 다음달 11일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정찰위성을 발사하기에 앞서 31일 0시부터 6월 11일 0시 사이에 위성을 쏘겠다고 국제사회에 통보한 바 있습니다.
이춘근 박사는 고공엔진용 지상 연소 첨단 시험장비가 없는 북한으로선 원인을 진단하고 오류를 시정하는 데 수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우주발사체 엔진이 그동안 여러 차례 위성발사체와 ICBM을 시험발사하면서 기술 수준을 높여 온 액체연료 기반 엔진이라는 점에서 2차 발사가 조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권용수 전 교수] “이름은 다르지만 그동안 북한이 쭉 액체기반의 위성발사체를 발사했고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문제를 정확히 찾아내고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해서 위성발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한편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개발 구상을 밝힌 이래 그동안 공을 들여 온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에 실패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북한이 스스로 기술적 결함을 시인했지만 이는 기술적 준비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발사를 너무 서둘렀음을 뜻한다는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오는 7월 27일 정주년을 맞는 이른바 ‘전승절’ 70주년을 앞두고 상반기 안에 ‘위성발사 성공’에 따른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의 민간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미한의 확장억제 강화와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이 북한을 서두르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서 한미간 핵 공조랄까 이런 부분이 높아지고 특히 북한이 전혀 대응할 수 없는 SLBM이 한반도 지역에 상시 배치되고 이런 부분들이 북한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죠. 이런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선 8차 당대회에서 주장했던 그런 무기 체계 개발을 완성시켜야 하는 악순환 고리에 빠지고 있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도 있는 거죠.
북한이 위성 발사 실패 소식을 즉각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실패 원인까지 제시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지난 2012년 4월 지구관측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 3호' 발사에 실패했을 때도 “궤도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바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자위권’을 앞세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잇단 현지지도와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입장 발표 등으로 수 차례 위성 발사를 대내외에 예고한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비공개로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향후에도 추가 발사를 통해서 반드시 위성을 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 체제에선 경제실패나 이런 부분도 그동안 공개해 왔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공개하는 게 부담이 덜 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위성발사 실패가 북한 정권에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입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그리고 사회적으로 동요하는 상황 그리고 또 이게 7월27일 전승캠페인을 하면서 발사한 거라 분명히 이걸 갖고 상당히 선전수요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 건데 실패를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조기에 성공을 못하면 막대한 재원을 날리고 또 올 보릿고개 상황에서 식량난이 심화되거나 이런 부분이 있으면 파장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북한은 그동안 여섯차례 위성 발사 가운데 2012년 12월 발사한 ‘광명성 3호 2호기’와 2016년 2월 발사한 ‘광명성 4호’가 위성 궤도에 진입엔 성공했지만 정상 작동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