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박에 유류를 불법 환적을 한 뒤 이를 은폐하려 시도한 싱가포르인이 자국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불법 환적을 숨기기 위해 선박 운항 일지를 위조하고 운항 내용이 담긴 컴퓨터 장치를 파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싱가포르 지방법원은 5일 자국 선박인 ‘씨 탱커 2호(MT Sea Tanker II)’가 북한 선박에 유류를 불법 환적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제공한 싱가포르인 40대 남성 제레미 코 렌펑(Jeremy Koh Renfeng)에 대해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이날 공시한 판결 자료에서 씨 탱커 2호의 화물 담당관이었던 렌펑 씨가 선박의 공식 항해 일지에 허위 정보를 제공해 고의로 사법 과정을 방해하고 운항 기록이 담긴 컴퓨터 처리장치를 분해 및 폐기한 두 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이같이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선고 과정을 취재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신문 등에 따르면 렌펑 씨는 ‘씨 허브 탱커스’ 회사에서 화물 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동료 직원이자 이번 사건의 공범인 다른 2명과 짜고 북한 선박에 불법 환적한 기록을 위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공범 2명은 싱가포르인 옹 초우 홍(Ong Chou Hong)과 베니 탄 춘 키앗(Benny Tan Chun Kiat)으로 이들은 이미 지난 3월 싱가포르 법원에 의해 렌펑과 같은 혐의로 각각 징역 9개월과 6개월을 선고 받은 바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싱가포르 수사 당국은 싱가포르에 등록된 유조선인 ‘씨 탱커 2호’가 지난 2018년 10월부터 같은 해 12월 사이에 북한 국적 선박인 ‘안산 1호’에 유류를 불법적으로 환적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싱가포르 해양 항만청이 ‘씨 허브 탱커 2호’ 소유 회사에 선박 운항 일지와 유류 정보 등을 요청했는데, 선박 회사 감독관과 화물 담당관이었던 홍 씨와 키앗 씨는 렌펑 씨에게 운항일지 위조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렌펑 씨는 선박 운항 기록을 수정하고 선박 활동 정보가 기록되는 컴퓨터 처리 장치를 파괴해 바다에 유기한 뒤 새 컴퓨터 처리 장치를 유조선에 설치해 당국의 수사에 혼선을 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북한과의 불법 환적과 거래 과정에서 작성된 모든 한글 문서와 영수증도 함께 폐기한 사실도 혐의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북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국가로 꼽히지만 싱가포르 국적의 개인과 기업은 최근 대북 제재 위반 사례에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 외교부는 북한의 지난 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 대북 제재 회피에 관여한 개인 4명과 기관 5곳을 독자 제재 대상에 추가했습니다.
특히 제재 대상에 오른 5개 기관 가운데 싱가포르 국적 법인 ‘싱가포르 트랜스아틀란틱 파트너스(Transatlantic Partners Pte. Ltd)’와 싱가포르 벨무어 매니지먼트(Velmur Management Pte. Ltd)’가 포함됐으며, 이들 회사는 북한에 불법적으로 유류를 공급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020년엔 북한에 고급 주류를 판매한 혐의로 싱가포르인 림쳉휘-홍렝위 부부가 실형을 선고받았고, 2021년에는 북한과 사업을 벌이며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대상에 올랐던 탄위벵이 싱가포르 법원에서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아울러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지난해 4월 대북 제재를 위반한 싱가포르 기업의 자금 59만 9천930달러에 대한 몰수 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또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도 지난해 10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어기고 북한에 유류를 공급한 혐의로 싱가포르 국적자 곽기성과 싱가포르 소재 ‘안파사르 트레이딩’, ‘스완지 포트 서비스’ 등을 독자 제재 대상에 올렸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