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고위급 회동, 북일 대화 모색 움직임...신냉전 구도 속 외교 셈법 복잡해져

최영삼(왼쪽 가운데) 한국 외교부 차관보와 쑨웨이둥(오른쪽 가운데)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4일 베이징 시내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 제공)

패권경쟁을 벌여온 미국과 중국이 최근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는 가운데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진영 간 대립 구도에 복잡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북한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고위급 접촉을 모색하고 있고, 한국과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확정 후 첫 고위급 공식 회담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타이완 문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 등으로 갈등이 깊어진 한국과 중국이 고위급 대화를 재개했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는 4일 베이징 중국 외교부에서 차관급인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과 차관보급인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를 잇달아 만났습니다.

특히 최 차관보와 쑨 부부장은 정식 회담과 오찬 등으로 3시간 이상 소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회동은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3기가 공식 출범한 이후 양국 차관급 이상의 외교 관료 간에 이뤄진 첫 정식 회담이었습니다.

최 차관보는 회담에서 북한의 도발 중단과 비핵화 대화 복귀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했습니다.

쑨 부부장은 한중 관계의 핵심 갈등 사안으로 떠오른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한국 측이 엄수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최영삼(왼쪽) 한국 외교부 차관보와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4일 베이징 시내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 제공)

이에 대해 최 차관보는 한국의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은 수교 이래 변함없이 견지돼 왔다고 확인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특히 최근 양국 관계 악화 책임을 한국 탓으로 돌렸던 태도를 바꿔 “이번 회담에서 양국 관계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소통을 했다"며 “양국 관계의 당면한 어려움을 조속히 극복하고 건전한 발전의 궤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이런 미묘한 변화는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에 이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곧 중국을 방문하는 등 전략경쟁이 치열했던 미중 사이에 새롭게 조성된 대화 무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입니다.

중국으로선 미국과의 담판을 앞두고 미한일 협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관측입니다.

한국으로서도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갈등 고조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큰 방향에선 한중 간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이런 고위층 소통 이런 것들에 대한 큰 기본적인 방향은 설정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미국이 중국과 대화 무드로 돌아서니까 그런 분위기에 맞춰, 계기로 삼아서 진행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중 두 나라는 지난 4월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타이완해협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언급과 싱하이밍 한국 주재 중국대사의 지난 6월 ‘중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발언 등을 계기로 갈등이 고조됐었습니다.

같이 보기: 한국 외교부, 싱하이밍 중국 대사 불러 "도발적 언행 내정간섭" 경고

이런 가운데 북한과 일본도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진영구도를 넘어 고위급 대면외교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의 운을 띄우고, 북한이 “일본이 새로운 결단을 내린다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이후 실무급 접촉설까지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이자 납치 문제 담당상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3일 북일 간 실무접촉설을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교섭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납치 피해자가 하루라도 빨리 귀국할 수 있도록 전력으로 과감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납북자 문제는 일본 정부로선 오래된 최우선 외교 과제인데다 북일 두 나라는 과거 정상회담까지 열면서 일부 진전을 본 사안인만큼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납북자 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며 의제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일본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일본과의 대화가 돼서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면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고 두 번째는 한미일 협력의 구도를 흔들 수 있죠. 그리고 세 번째는 뭔가 정말 잘돼서 북일 간 국교 정상화로 간다면 북한 입장에선 엄청난 배상금이 있으니까 경제적 어려움을 한꺼번에 뚫을 수 있는 물론 그것은 제재도 여전히 있고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 여론전에서도 자신들이 좀 열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결코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거죠.”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갈등 심화를 활용하려는 북한에게 최근 미중 간 대화무드는 심각한 부정적 정세 변화로 여겨질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일본과의 대화 모색은 외교적 활동공간을 넓히려는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패권경쟁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대립구도는 과거 냉전체제와 달리 경쟁과 협력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며, 한반도 주변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진영을 넘어선 외교 행위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미중 전략경쟁도 무한으로 치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양쪽 다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 한 쪽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거든요. 따라서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피로감이 많이 커졌기 때문에 이제는 외교의 시간, 갈등 관리의 시간으로 볼 수 있거든요.”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그러나 미중 간 대화 무드가 미국의 대중정책, 그리고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과도한 갈등으로 인한 군사적 충돌을 막고 경제지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축소하려는 입장이지만 대중정책을 바꿔가며 중국과 어떤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김 교수는 미국이 북일 간 대화 모색 움직임에 대해선 한반도 정세의 갈등 관리 차원에서 이를 지켜보는 입장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북한 비핵화가 이제는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한반도 문제와 북한 문제를 일정 정도 관리할 필요성을 미국도 충분히 느끼는 것이고 그렇지만 정말 북한의 근본적 문제 즉 북한 비핵화 문제에 있어선 여전히 해법이나 대화 국면의 시작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오는 1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참가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 핵 문제 등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