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중러 대표단과 '전승절' 열병식...ICBM 공동사열 밀착 과시

27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28일) 보도한 장면.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른바 ‘전승절’ 열병식을 열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핵 무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주석단에 동석해 북중러 연대 의지를 과시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열병식이 거행됐다”고 28일 보도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의 북한식 호칭인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장인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나란히 주석단 중앙에 자리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월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처음 공개했던 것과 달리 이번 열병식에는 새로운 핵 전력을 선 보이지 않고 기존 전략무기들을 대거 동원했습니다.

27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28일) 보도한 장면.

‘화성-18형’과 액체연료 ICBM인 ‘화성-17형’이 대열의 마지막에 등장했고, 지난 3월 개발과 시험 사실이 처음 공개됐던 핵어뢰 ‘해일’로 추정되는 무기도 열병식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옆에 자리한 쇼이구 국방장관과 긴밀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리훙중 부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과 쇼이구 장관은 열병식 말미에 ‘화성-18’’형이 주석단 앞을 지나가자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러시아 국방장관이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열병식 도중 거수경례하고 있다. 오른쪽은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28일) 보도한 장면.

불법적인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북한에 중국과 러시아가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용인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던 의도대로 연출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러 대표단 앞에서 신형 전략무기를 과시하면서 대등한 입장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의도도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 전술적 협력 강화를 염두에 둔 것인데 실질적으론 전략무기 개발과 관련해서 정당성을 보다 강조하고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 왔지만 보다 뒷배로서의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무언의 압력이라고도 보거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 핵 개발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동참했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개발한 ICBM 앞에서 축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북한의 계산된 연출이라며, 안보리 제재 무력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열병식 연설에는 김 위원장이 아닌 강순남 북한 국방상이 나섰습니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이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28일) 보도한 장면.

김 위원장은 열병식뿐 아니라 쇼이구 장관과 가진 담화와 오찬, 연회에서도 공개 보도상 말을 아꼈고, 전승절 70주년 기념보고대회에서도 리일환 노동당 비서가 연설을 맡았습니다.

강 국방상은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핵전쟁을 일으키겠는가 하는 게 문제라며 미국은 “북한에 핵을 사용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어 미국이 그 누구의 정권 종말을 입에 올리기 전에 자기의 멸망에 대해 걱정해야 할 때라며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들이밀기 전에 북한의 전략 핵무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최근 출범한 미한 핵협의그룹을 두고 “핵전쟁 기구”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당초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중러 대표단을 향해 3국 공조를 강조하는 연설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홍민 박사는 대미 비난 메시지가 대부분인 연설을 김 위원장이 직접 중러 대표단 앞에서 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강순남 국방상의 연설 내용을 보면 대미 비난 부분이 후반부에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비난을 김정은이 직접 하고 양쪽에 러시아와 중국을 놓고 그것을 듣도록 하는 모양새가 김정은 입장에선 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열병식에는 무인 정찰기 ‘샛별-4형’과 무인 공격기 ‘샛별-9형’이 선을 보였습니다.

이들 무인기는 열병식이 시작되기 전 평양 김일성광장 상공을 비행했고, 열병식에선 차량에 실린 채 대열에 포함됐습니다.

이들 무인기는 김 위원장과 쇼이구 장관이 지난 26일 함께 찾은 ‘무장장비전시회-2023’ 행사장에 전시된 모습이 처음 잡혔습니다.

미국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와 무인공격기 리퍼와 모양이 매우 흡사합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미국의 첨단 모델을 외형만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이 신무기를 보여주려는 조급함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글로벌호크는 거의 정찰위성에 가까운 자산입니다. 글로벌호크에서 지상을 감시하면 20km 상공에서 30cm 급의 목표물을 식별해야 돼요. 그러면 북한이 그런 능력이 있느냐, 지난 번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한 것을 한국 군이 이를 수거한 내용을 보면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양 박사는 그러나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려는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지원받아 성능이 향상된 드론을 생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김진무 교수는 북한은 이번 전승절을 통해 자신들의 핵무력 고도화에 대한 중러의 지지를 다지고 향후 핵 개발의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며, 북중러의 밀착은 미한일과의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한미일의 대응은 결국 군비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죠. 한미일 공조체제가 굉장히 강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라든지 서로 간의 협력체제가 강화되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보다 더 압박해 들어가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김 위원장은 특히 25일 밤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한 이후 쇼이구 장관과는 26일에 접견, 무기전시회 참관, 기념공연 관람, 그리고 27일엔 회담과 오찬, 만찬, 기념보고대회와 열병식 참석까지 2박 3일 간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28일 이번 열병식 기념행사가 “내부 정치행사보다 중러 대표단과의 친선행사 위주”로 치러졌다며 “중러와의 연대 과시를 통한 대외 메시지 발신에 집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전승절 행사 기간 “중국보다는 러시아와 보다 밀접한 협력 의지를 표명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통일부는 “중국 대표단과는 공연장에서의 김정은 약식 접견 외에는 동반 일정 보도 비중 등 측면에서 러시아와 확연한 온도차”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