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미한 연합훈련 앞두고 군수공장 시찰… 대러 무기 수출 관련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준경 렌즈로 목표물을 겨냥해 소총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관영 매체가 6일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수일 간 재래식 무기 중심으로 군수공장들을 집중시찰하면서 ‘전쟁 준비 완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달 말 있을 미한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이면서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에서 5일까지 사흘 간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을 비롯한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하면서 당의 군수공업정책의 핵심 목표 수행정형을 요해했다”고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초대형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을 시찰하면서 “공장 경영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새로운 탄종을 계열생산하기 위한 능력 조성사업 등 국방경제사업의 중요 방향을 제시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이 “군의 전쟁 준비를 더욱 완성해나가는 데서 공장이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책임과 임무”를 강조하고 “국방공업의 발전성과 현대성을 상징하는 본보기 공장 앞에 나서는 당면과업과 전망과업 수행을 위한 방도들을 밝혀줬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밖에 중요 전략미사일 발사대차와 새로운 계열의 저격무기 생산 실태를 파악하고 전략순항미사일과 무인공격기 엔진 생산공장도 현지지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수일에 걸쳐 군수공장을 집중시찰한 사실이 공개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북한의 무기 자체생산 능력에 대해 꾸준히 제기돼 온 외부사회의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북한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량이 실존한다는 겁니다. 여태까지 시험 등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준비됐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습니다만 과연 북한이 그런 경제적 역량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왔는데 그런 부분들을 불식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런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또 오는 21∼24일 미한 연합군사연습과 연계돼 실시되는 을지프리덤실드(UFS) 연습을 앞두고 이뤄져 이에 대한 일종의 맞대응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흰색 인민복 차림에 빵모자를 쓰고 조준경 렌즈로 목표물을 겨냥해 소총을 시험사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1948년 12월 12일 북한에서 자체 제작한 기관단총을 시험사격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흡사한 장면을 연출한 겁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미한 연합연습과 미한일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전쟁 준비 완성’을 강조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미국과 남조선의 침략 의지가 강하고 실제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는 나라의 안보 또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이렇게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있고 또 실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주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을 강요하고 김정은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생각이 들고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미국이나 한국을 직접 겨냥한 자극적인 표현이 포함되지 않아 미한 연합연습에 대한 맞대응 보다는 러시아와 거래를 염두에 둔 ‘무기 홍보’ 차원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난달 말 이른바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군사대표단과의 군사 협력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입니다.

러시아 공군기가 열병식 이후 이달 1일 평양에 갔다가 이튿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습니다.

구병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김 위원장의 군수공장 시찰 일정을 공개한 의도에 관해 “국방 분야 성과를 과시하고 미한 연합훈련에 대응하면서 무기 수출까지 여러 가지 다목적 포석을 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 대변인은 특히 김 위원장이 언급한 ‘국방경제사업’이라는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북한이 사용했던 '국방경제사업'이라는 표현은 매우 이례적인 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기 수출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겠다고 스스로 공언한 것으로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시찰 사진에는 600㎜ 초대형 방사포 완성품을 전시해 둔 모습과 지난달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전략무인정찰기 ‘샛별-4형’과 공격형 무인기 ‘샛별-9형’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엔진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와 함께 옛 공산권에서 널리 사용한 AK 계열 소총을 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총과 미국의 특수부대용 스카(SCAR) 돌격소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소총들도 공개됐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시찰한 곳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탄약과 포탄류, 무인기 등 주로 재래식 무기 생산시설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전쟁 준비라는 표현을 썼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그동안 주력한 것은 전략무기들이거든요. 완전히 방점이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이 전쟁 준비라 함은 이번엔 재래식 전력이라고 본다면 결국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재래식 소모품,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밖엔 볼 수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러시아는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래 전쟁이 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이자 부족해진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북한으로부터 공급받았다는 의심을 받아왔고 최근엔 북한제 포탄 등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반입된 정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북러 양측은 이 같은 무기 거래 의혹을 부인해왔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로 미뤄 북한은 이미 강력한 국제사회 제재로 더 잃을 게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러시아와의 연대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실제로 북한이 잃을 건 없어요. 러시아와 북한이 무기거래를 하더라도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대북 제재 품목들을 지원받는다면 두 국가 간엔 서로 이익이 되는 거죠. 이미 제재로 해서 서로 잃을 게 없는 국가들인데 그런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제재로선 전 세계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죠.”

한편 김 위원장의 이번 시찰에는 올해 초 해임됐던 박정천 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비서가 수행해 중요 직책에 복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포병사령관 출신인 박정천은 작년 말까지 군부 일인자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맡다가 이듬해 초 돌연 해임된 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