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6일 최고인민회의…‘경제난 희생양’ 총리 경질, 대규모 숙청 가능성 제기

북한 김덕훈 내각 총리가 황주군 대동농장을 시찰했다며, 지난달 8일 관영매체들이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오는 26일 최고인민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김덕훈 내각총리를 이례적으로 공개 질책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경제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대규모 숙청을 벌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오는 26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법안을 심의하고 조직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가 9월 26일 평양에서 소집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 같은 결정은 지난달 30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려졌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조직 문제가 논의된다고 밝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한 질책을 받은 김덕훈 내각총리의 경질을 비롯해 내각 개편 여부가 주목됩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21일 안석 간석지 피해 복구 현장을 찾아 재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김덕훈 내각에 돌리면서 “건달뱅이들의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김 총리에 대해 “나라의 경제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며 “내각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와 사상 관점을 당적으로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 총리뿐만 아니라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도 예고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해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 “간석지 건설국장은 공급받은 연유를 떼 몰래 은닉해놓는 행위까지 했다는데 정말 틀려먹은 것들”이라고 구체적인 비리 사실을 적시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노골적인 언어와 자세로 김덕훈 총리를 비롯한 간부들을 맹공격한 것은 식량난 등 열악한 경제 상황의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3년차를 맞았지만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희생양’ 만들기라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후유증, 알곡 생산 구조 변화 정책 등 각종 정책적 실패로 북한의 경제 회생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경제 회생의 과제를 내각에 전적으로 일임해 김 총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발언 수위로 미뤄 최고인민회의라는 형식적 절차를 통한 사실상의 대규모 숙청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체제 결속, 기강 잡기 이 차원에서 강조했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발언 수위가 너무 세요. 누가 봐도 저건 살아남기 힘들겠는데 이런 정도의 표현들이 나왔거든요. 저 상황에서 유야무야 넘어가긴 어려울 거다, 전례에 비춰서 경우에 따라선 대규모 유혈숙청의 예고라고 볼 수 있고요.”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내각을 ‘경제사령탑’으로 규정했지만 내각은 국가보위성, 총정치국 등 경제적 특권을 가진 권력기관에 비해 실권이 없는 조직이라며 김 위원장이 이를 알고도 내각에 경제 회생을 맡겼다는 것은 “의도된 책임 회피 전략”의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 특유의 인사스타일로 볼 때 김 총리를 바로 경질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김 총리에 대한 비판은 개인 비리나 정치적 결함 보다는 정책적인 잘못과 헌신 부족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측근들을 돌려가며 쓰는 김 위원장의 용인술로 미뤄 김 위원장을 바로 버리진 않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녹취: 김인태 수석연구위원] “새로운 사람을 회전문 인사로 쓰는 게 아니고 자기가 괜찮다고 평가했던, 인정했던 인물들을 계속 기용해서 쓰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땐 김덕훈도 그런 인물 중에 한 명인 탓에 그렇게 함부로 잘라서 아예 내버리진 않지 않겠냐 싶기도 합니다.”

김 총리는 지난 2020년 북한 고위 간부들 사이에선 젊은 축인 59세 나이로 경제를 총괄하는 총리에 올랐습니다.

북한 권력의 정점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으로, 김 위원장의 최측근을 상징하는 가죽 롱코트를 걸치고 경제 현장 시찰에 나서는가 하면 주요 행사에서 김 위원장 다음으로 이름이 불리는 경우도 잦아 실세로 평가됐습니다.

북한은 또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관광법과 검찰기관조직법, 상품유통법 등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른 국경 봉쇄를 3년7개월만에 해제하면서 대외 개방은 확대하되 내부통제는 강화하는 이중의 대응전략을 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이번에 채택된 관광법은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과 동시에 국제 관광을 확대하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보장”하는 문제가 담겼습니다.

현재 자국민의 귀국만 허용한 상황을 넘어 외국인의 입국에도 대비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검찰기관조직법에 대해 검찰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목적 아래 “각급 검찰기관들의 조직과 활동 원칙, 사업체계와 질서 등의 문제들이 반영됐다”고 언급했습니다.

관광법이 ‘국제 관광 확대’를 위한 것으로 개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검찰기관조직법은 국경 봉쇄가 풀리면서 생길 수 있는 내부 분위기 이완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됐다는 관측입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대외적으로 인적 교류, 교역 확대라는 추이에 맞게 사회적으로 단속해야 할 부분에 대해선 검찰조직에 관한 법을 통해서 좀 더 강화하는 추이를 보여준 것이고 관광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지금까지 관광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재정 등에서 결손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선 관광 관련 부분에서 좀 더 법적으로 장려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추이를 보여주는 법 제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은 상품유통법에 대해선 “상업망의 조직 운영과 상품의 확보, 공급, 판매를 비롯해 상품 유통 전반에 대한 국가의 조절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국경 봉쇄로 뜻하지 않게 해외에서 장기체류하는 동안 각종 정보를 접하고 외화를 벌어들인 북한 사람들이 최근 무더기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생길 수 있는 불법 상행위나 외국 문물 유포 등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은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주민들로부터 외부문화를 차단하는 데 주력해 왔다며 최근 국경 개방으로 귀국한 이들에 대한 강도 높은 교육과 단속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해외에서 3년 6개월, 7개월씩 근무하다 온 사람은 사실 이미 많이 사상적으로 변질됐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 사람들을 어떻든 포용해서 반동사상문화를 배격하는 방향 그래서 내부 결속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민들을 재교육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재교육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 감시 통제 하에 있으면서 언행을 굉장히 조심해야 할 거에요.”

북한은 앞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그리고 올해는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체제 수호에 위협이 될 외부 문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법들을 연달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