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구소 소속 북한 연구원 30여명 포착…과학협력금지∙노동자송환 규정 위반

지난 201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매스게임 공연 '인민의 나라' 카드섹션에 과학자 그림이 등장했다. (자료사진)

중국에서 활동 중인 북한 이공계 출신 연구원 30여 명이 새롭게 포착돼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명시한 과학 분야 협력 금지와 해외 노동자 송환 규정을 모두 위반하고 있는 건데, 북한 연구원 수가 예년에 비해 급증한 점도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중국 대학과 연구소 등지에서 활동 중인 북한인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VOA가 전 세계 논문 관련 웹사이트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게시된 논문과 학술지 등을 분석한 결과, 올해에만 최소 34명의 북한 출신 연구진이 중국 대학에 소속된 상태로 중국 연구진과 공동 논문을 집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1년에 10명 내외의 북한 연구진이 중국에서 포착됐던 전례와 비교할 때 약 3배 급증한 수치입니다.

논문을 작성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북한 연구진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은 북한 연구진이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해 사이언스 다이렉트에서 포착된 중국 연구소 소속 북한 연구진. 순서대로 이름, 현재 소속, 북한 출신 대학.

북한 연구진의 중국 내 연구 활동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 논란을 낳습니다.

특히 이들이 중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월급을 수령하거나 생활비와 학비 보조, 장학금을 받고 있다면 이는 유엔 안보리의 북한 해외 노동자 관련 규정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안보리는 지난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 2397호를 통해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2년 뒤인 2019년 12월까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노동자는 건설업이나 벌목업, 식당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인력으로 인식되지만, 과거 안보리는 북한 국경 밖에서 외화 수입을 거두는 모든 북한인을 ‘해외 노동자’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과거 해외 프로팀에서 활약하던 북한 축구선수들이 ‘해외 노동자’ 규정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 출신으로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 리그에서 뛰었던 한광성 선수.

앞서 VOA는 지난해 게시된 한 논문에 이름을 올린 북한 연구진 김학봉이 김책공업대를 거쳐 중국 저장대에 수학 중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익명을 요구한 유엔 관계자는 VOA에 “해외 노동자 관련 규정에 대한 위반일 수 있다”며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발견된 북한 연구진의 연구 분야도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올해 8월 발간된 국제학술지 ‘톡시콘(Toxicon)’에 중국 우한대 바이러스학 국가핵심연구소 소속 연구진의 논문이 소개됐습니다.

올해 8월 발간된 국제학술지 ‘톡시콘(Toxicon)’에 실린 중국 우한대 바이러스학 국가핵심연구소 소속 리성룡의 공동 학술자료. 사이언스 다이렉트' 홈페이지 (sciencedirect.com) 화면 캡처

이 논문은 전갈 독에서 나온 물질과 ‘그람 양성 박테리아’의 상호 작용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총 5명의 연구진 명단에는 북한 김형직대 출신의 리성룡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이언스 다이렉트는 별도의 저자 소개 페이지에서 리성룡이 현재 우한대 바이러스학 국가핵심연구소에 소속돼 있으며, 동시에 우한대 바이오약학 연구센터와 김형직대에 적을 두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형직대에서의 약력 부분에는 그가 ‘교수(faculty)’로 소개돼 있습니다.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소개된 내용만으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한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의혹이 일었던 연구소에서 북한 연구진이 활동 중이라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리성룡과 유사한 사례는 더 있습니다.

함흥화학공업대 출신의 리광철은 난징사범대에 소속된 상태에서 희토류와 관련된 논문 작성에 참여했고, 동북사범대 물리대에서 수학 중인 평양 과학대 출신의 류종성도 물리 관련 분야 학술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 북한 연구진은 해외 노동자 송환 규정과 별개로 북한과의 과학 분야 협력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도 위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에 따른 결의 2270호에서 유엔 회원국이 자국민을 통해 북한의 핵 활동이나 핵무기 전달체계 개발에 관한 전문 교육이나 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이어 같은 해 채택한 2321호에선 교육이나 훈련이 금지된 분야를 첨단 재료과학과 첨단 화학공학, 기계공학, 전기공학, 산업공학 등으로 특정하며 2270호의 다소 모호한 내용을 구체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위반을 감시하는 전문가패널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 연구진들의 공동 연구 행태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중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은 안보리 결의 위반 논란을 피하고자 선제적으로 북한의 고등교육 기관이나 북한 출신 학생 등과 거리를 둬왔습니다.

지난 2017년 이탈리아는 안보리에 제출한 대북제재 결의 이행보고서에서 북한 국적자 4명이 국제과학대학원과 국제이론물리연구소의 통합 박사과정에 소속돼 있었지만, 결의 2321호 채택 이후 학교의 결정에 따라 수학과 신경과학 등 덜 민감한 분야로 전공을 바꿔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역시 과학기술 분야에는 더 이상 학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고학 분야에만 학생이 남아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VOA는 중국 정부에 관련 내용을 문의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