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북한 김정은 전쟁 언급 허세 아냐” 진단 파장… 한국 전문가 “우발적 충돌 확전 가능성 큰 상황”

지난 15일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16일) 공개한 장면.

미국의 대북 협상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잇달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전쟁 언급이 빈말이 아니라며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진 않겠지만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상당히 커졌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로버트 칼린 미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 (자료사진=스탠퍼드대학교)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지난 11일 북한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알 수 없지만, 위험의 수위는 미한일의 일상적 경고를 넘어선 상태”라며 "지난해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미 조지타운대학교 명예교수 (자료사진)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최근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가 전쟁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이런 진단은 이들이 미국의 대북 협상을 주도했거나 유명한 북한통이라는 경력 때문에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 핵 위기’ 당시 미 국무부 북핵 특사로 대북 협상을 담당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대가로 경수로와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미북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인물입니다.

칼린 연구원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미 중앙정보국(CIA) 동북아 담당 국장과 대북 협상 수석고문 등을 지낸 인물로, 1996년 2월 이후 서른 차례 정도 북한을 방문했고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그프리드 헤커 미 미들베리국제연구소 교수 (자료사진)

해커 교수는 미국 내 최고 핵무기 연구소인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을 지냈으며 2000년대 수 차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한국을 제1의 주적으로,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 관계로 규정하면서 전쟁 불사를 언급했지만 북한이 선제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조건부를 붙이는데 그 조건은 전부 상대가 공격한다면을 전제로 달고 있어요. 그걸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선제적으로 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오히려 선언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본다면 오히려 상대에 대해서 상당히 방어적 태도에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이 전쟁을 각오하고 일을 꾸밀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미한은 ‘북한이 공격하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이런 생각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칼린 연구원과 해커 교수의 지적에 대해 박 교수는 전쟁은 북한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전쟁을 일으킬 동기가 현재로선 없다며, 타이완과 대치 중인 중국과의 협력 차원에서 북한이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북한이 중국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거친 언사는 미한 연합훈련이 전례없는 강도와 규모 그리고 빈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한 반발 성격이 크다며,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를 접었고 윤석열 한국 정부에 대해선 대북 압박을 주도하고 있다고 판단, 이례적으로 제1 주적으로 규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임 교수는 지금은 북한의 침공 보다는 남북 간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이 자신들의 원래 계획 또는 의도와 상관없이 군사적 충돌을 정면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럴 경우엔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다양한 전략전술 무기체계들을 고도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고요.”

북한이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칼린 연구원과 해커 발사의 견해에 대해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분석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 대해선 지금이 대결국면이라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며, 핵 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핵 군축 협상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미국에 대해선 대화엔 대화로, 대결엔 대결로 그러나 대결에 더 강력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고요. 그 얘기는 결국 대화를 할 건데 그러나 절대 주권은 흥정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다시 말해서 핵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겁니다.”

칼린 연구원과 해커 박사는 북한이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중국과 러시아 쪽으로 전략적 방향을 전환한 데는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쇠퇴하고 있다”는 평가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군사 분야 등에서 협력이 성과를 보였고 북한은 이런 점을 통해 국제 정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군사적 해법”으로 기울었다고 관측했습니다.

갈루치 교수는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정치환경을 고려하면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가 늘어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면서 “미국은 북한과 진심으로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비핵화를 첫 걸음이 아닌 더 장기적인 목표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과 초기 대화에서는 제재 완화, 미한 연합훈련의 성격 등 북한이 관심을 보여 온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중러와 미한일 간 대결구도는 현실과는 다른, 북한이 원하는 구도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신냉전이라는 게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국제질서라는 게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가 유지되고 있고 그 질서를 중국조차도 어쨌든 레토릭 차원에서 인정하고 현재 그 질서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도전하는 세력은 세계에서 두 국가 그것은 러시아와 북한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되느냐.”

박 교수는 또 북한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상황 인식에 대해서도 설사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편들기가 지속된다고 해도 국제사회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할 수 없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문제는 압박만으로 풀 단계가 지났는데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은 사실상 압박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패권경쟁과 미러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중러 간 협력은 단기간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북한은 제재를 견디며 핵 고도화를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