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사관 진입’ 크리스토퍼 안 법정 공방… ‘적대국 대상 행위’ 적법했나

지난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갈 때 CCTV에 찍힌 크리스토퍼 안. 안 씨의 변호사가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보석 재심신청서에 첨부한 사진이다.

2019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가담한 크리스토퍼 안 씨의 유죄 여부를 놓고 변호인과 검찰이 공방을 벌였습니다. 안 씨 측은 적대국을 상대로 한 행동은 처벌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미국 법에도 저촉되는 범법 행위라고 반박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29일 미국 연방법원 전자기록시스템(PACER)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은 크리스토퍼 안 씨가 미 보안국(US Marshall)을 상대로 제기한 ‘인신 보호’ 청원에 대한 심리를 26일 개최했습니다.

안 씨는 지난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납치극을 벌인 혐의로 지난 2022년 5월 스페인 신병 인도 결정을 받았으며, 이후 미 보안국을 상대로 인신 보호 청원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인신 보호 청원은 구금의 적법성을 법원이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절차로 최초 1심에 대한 ‘항소’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안 씨 측은 최초 자신의 구금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1심 자체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날 심리는 4차례 연기 끝에 개최된 것입니다. 또 안 씨가 최초 스페인 대사관에 침입한 시점을 기준으로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재판 절차가 이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심리에는 미 보안국(US Marshal)을 대리해 재판에 나선 연방검찰과 안 씨의 변호인 3명이 출석했습니다.

이날 검찰은 재판부에 신병인도의 기본 조건 중 하나인 `쌍방가벌성(dual criminality)'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심리 당일 재판부에서 띄운 슬라이드 사진을 29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안 씨의 행위가 왜 쌍방가벌성 원칙에 해당하는지 등이 설명돼 있습니다.

쌍방가벌성 원칙은 피의자의 범죄 행위가 신병인도 청구국과 피청구국 모두에서 위법일 경우에만 범죄인을 인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미국과 스페인의 형사법 모두 안 씨의 혐의를 처벌하고 있다는 내용을 슬라이드에 담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선 ‘불법 침입’ 혐의가 최대 2년 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인데 미국에서도 최대 6년 형으로 해당 범죄를 다스린다는 논거를 제시하며 안 씨의 구금과 신병인도의 합법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날 안 씨의 변호인단이 검찰의 이 같은 논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 씨의 이런 행위가 적국인 북한을 상대로 한 것인 만큼 미국에서 범죄로 처벌될 수 없다는 논리를 또다시 내세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 해병대 복무 당시의 크리스토퍼 안. 안 씨의 변호사가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보석 재심신청서에 첨부한 사진이다.

앞서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의 페르난도 애닐-로차 판사는 지난해 1월, 미북 간 군사적 충돌 이후 평화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며, 적대국에 대한 미국인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범죄로 인식되는지를 변호인과 검찰 측에 공개 질의한 바 있습니다.

이후 안 씨의 변호인은 재판부의 이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미북 관계와 북한의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북한 관리 혹은 외교관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펼쳐왔습니다.

재판부가 직접 안 씨의 행동을 범죄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건데, 미국 검사 출신인 정홍균 변호사는 당시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판부가 미북 관계의 성격을 고려 대상으로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정홍균 변호사] “만일 두 국가 간에 특정한 범죄에 대한 공동 인식이 결여됐을 경우에는 신병인도 자체에 대한 무리가 따르게 되겠죠. 크리스토퍼 안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동일한 형사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분석함에 있어서 현재 미국과 북한의 국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 여기에 붙었다는 것이 참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 씨 사건에 대해 미국 재판부가 이례적 의견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최초 안 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진 로젠블루스 판사는 지난 2022년 5월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를 승인하면서도 별도의 결정문을 통해 자신의 결정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안 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법리적 판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만약 재판부가 안 씨의 구금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는 취소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안 씨는 구치소로 옮겨져 신병인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무장관에겐 ‘미국 시민의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안 씨의 신병인도를 반대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때는 법원의 명령과 관계없이 안 씨는 스페인으로 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 씨 측 변호인은 안 씨가 지난 2017년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카인 김한솔의 탈북을 도왔다는 이유로 북한의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월까지 국토안보부에 근무한 이언 브레크 전 법무담당관 대행은 2022년 재판부에 제출한 서한에서 “당시 국토안보부는 다른 정부 부처와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를 피할 수 있는 잠재적 방안을 협의 중이었다”며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안 씨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