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 병사 한 명이 오늘(20일) 새벽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북한 주민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통과해 망명한 지 12일 만에 또다시 남북 경계선을 걸어서 넘어온 겁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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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북한 군 사병이 한국에 망명했다고요, 한국 군 당국이 밝힌 망명 과정을 전해주시죠.
기자) 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군이 “20일 동부전선에서 북한 인원으로 추정되는 1명의 신원을 확보해 관계기관에 인계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군 관계자는 “북한 군 1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20일 새벽 이른 시간에 망명 의사를 밝혔다”며 “군은 해당 인원이 동부전선 MDL 이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부터 추적, 감시하면서 정상적으로 망명 유도 작전을 진행해 신병을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북한 군은 강원도 고성 동해선 인근 오솔길을 따라 도보로 한국 측 육군 22사단 작전지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계급은 하사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당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선 북한 군이 자기 측 지역에 지뢰 매설과 불모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 군은 작업하는 북한 군이 들을 수 있게 대북 확성기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관계기관은 이 북한 군을 인계받아 망명 경위와 남하 과정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 군이 DMZ를 통해 망명한 건 오랜만의 일인 것 같은데요, 한국 측 관계 당국이 현재 조사 중이긴 합니다만 망명 배경에 대해 나오는 얘기는 없습니까?
기자) 북한 현역 군인이 한국으로 넘어와 망명 의사를 밝힌 게 공식 확인된 건 2019년 8월 이후 약 5년만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망명한 북한 군에 대해 관련 기관에서 조사 중이라고만 할 뿐 신상정보 등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북한 군 병사의 망명이 북한 군 내부의 심각한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군은 주로 걸어서 오거나 수영해서 온다”며 “북한 군의 기강과 감시체계의 문제 등과 같은 차원에서 만약 이 숫자가 빈번해지면 전반적으로 접경지역에 근무하는 북한 군인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9.19 남북 군사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현재 미한 연합연습인 을지프리덤실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벌어진 탈북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이 남북을 전쟁관계로 선언하고 DMZ 경비를 강화하고 또 지금 UFS 훈련으로 북한 군도 비상체제일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넘어왔단 얘기죠. 이 얘긴 생각보다 북한 군 체제가 이완돼 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시체제인데 지금 북한 입장에선 전선 양쪽이 뚫린 거거든요.”
진행자) 최근 남북한 접경지역 긴장이 이런저런 이유로 고조된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도 이번 망명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요?
기자) 네, 그런 관측들도 나옵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남북 단절 조치를 지시한 데 따라 4월쯤부터 MDL 등 전선지역 곳곳에 다수 병력을 투입해 불모지 조성과 지뢰 매설, 전술도로 보강, 대전차 방벽 설치 등의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불모지 작업과 지뢰 매설 중 수 차례 폭발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작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전략비축미까지 풀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식량 사정 때문에 굶주린 북한 군 병사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입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과거에 긴장 완화를 위해서 취했던 조치들을 폐기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과정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군인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담은 상당히 커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은 들어요. 그런 점에서 이건 앞으로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중요한 의미들은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얼마 전에도 북한 주민이 도보와 수영으로 한국으로 망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한국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잇단 망명에 영향을 줬다는 관측도 나온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북한 군 망명에 앞서 지난 8일 새벽에도 북한 주민 1명이 한강하구 남쪽 중립수역을 넘어 망명했었습니다. 이 주민 역시 이동 수단 없이 도보와 수영으로 한국으로 내려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두 사건은 공교롭게 한국 군이 북한의 쓰레기 풍선 살포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달 21일 모든 전선에서 대북 확성기를 가동한 뒤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 접경지역을 통과한 잇단 망명에 북한 정권의 실상을 전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일정한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두진호 박사입니다.
[녹취: 두진호 박사] “북한 전연군단은 전술도로를 강화한다든지 지뢰지대를 정비한다든지 방벽을 쌓는다든지 하면서 온열손상 환자들도 많이 발생했거든요. 심지어 지뢰를 밟아서 사상자도 발생했고 민심과 군심이 이렇게 이완되고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트리거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대북 확성기 작전이 북한 장병들의 인지영역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평가해봅니다.”
진행자) 김 기자, 북한 군은 물론이고 주민들이 한국과의 경계선을 넘어 직접 망명하는 일이 잦아지는 양상 아닌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난해 5월엔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목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한국으로 망명했고 같은 해 10월엔 북한 여성 3명과 남성 1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상으로 넘어왔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북중 접경지역의 통제 강화, 북러 밀착 등으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경유한 탈북 루트들이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 탈북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럼 남는 선이 냉전시기처럼 DMZ와 동서 해상이거든요.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이 DMZ와 동서 해상, 한강하구를 통한 루트의 탈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어요.”
만성적인 경제난 속에 북한 당국의 통제와 단속 강화, 그리고 수해 등으로 민심이 불안정해지면서 접경지를 통한 북한 주민들의 직접 망명 사례가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