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박 간 환적이 빈번하게 이뤄진 동중국해 해상에서 북한 유조선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이 유조선에 유류가 건네진다면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유조선 운흥8호가 동중국해 해상에 출현했습니다.
선박의 위치 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운흥8호는 현지 시각 27일 오전 3시 45분경 중국 저우산 남쪽 약 45km 해상에서 포착됐습니다.
이 선박은 당시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던 중 잠시 모습을 드러낸 뒤 다시 위치 신호를 끄고 잠적했습니다.
선박 간 환적 빈번한 닝보-저우산 해역 등장
운흥8호가 발견된 닝보-저우산 해역은 과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북한 선박과 중국 선박의 불법 접선지로 여러 차례 지적한 곳입니다.
이 선박이 닝보-저우산 해역으로 향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법 환적의 온상으로 알려진 해상에서 발견된 북한 유조선은 불법 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운흥8호는 이미 지난달 말에도 수상한 항적을 보인 바 있습니다.
앞서 VOA는 지난달 30일 운흥8호가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시 앞바다에서 남쪽 약 200km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한 뒤 약 하루 만에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왔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특히 방향을 갑자기 180도 트는 등 일반적인 선박과 전혀 다른 형태로 운항하면서, 이 일대에서 다른 선박으로부터 유류를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약 한 달만에, 그것도 모항인 북한 남포에서 약 1천100km 떨어진 바다에서 위치 신호가 잡힌 것입니다.
유류 선적, 제재 위반 논란 제기
미국 정부는 올해 북한에 반입된 유류가 이미 유입 한도를 초과했다는 입장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연간 정제유 수입 한도를 50만 배럴로 제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올해 5월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올해 북한에 제공한 정제유 양이 이미 유엔 안보리가 정한 한도를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커비 보좌관] “Russia has been shipping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Russian shipments have already pushed DPRK inputs above mandated by the UNSC. In March alone, Russia shipped more than 165,000 barrels of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당시 브리핑이 이뤄진 5월 이후 북한에 공급되는 유류는 모두 결의 위반이라는 의미입니다.
MMSI 번호만 노출
운흥8호가 국제해사기구(IMO) 고유 번호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통상 선박은 자신의 위치 정보를 외부로 송신하는 AIS를 통해 선박 이름, 선적과 더불어 IMO 고유번호와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를 공개합니다.
특히 이중 IMO 고유번호와 MMSI는 IMO의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개돼야 합니다.
그런데 운흥8호는 선박 이름과 선적과 더불어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만을 발신했을 뿐 IMO 번호는 감췄습니다.
IMO 번호는 선박의 건조 시점부터 부여되는 번호로, 통상 국제사회는 IMO 번호를 통해 대북제재 대상 선박을 식별합니다.
선박이 국제해사기구에 등록되는 시점에 부여되는 IMO 번호는 선박의 소유주나 기국이 변경되더라도 처음 번호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MMSI는 선박의 등록 국가가 부여하며 언제든 새 번호로 바꿀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선박 전문가인 우창해운의 이동근 대표는 VOA에 “정상적인 선박으로 국제 항행을 할 땐 두 가지 번호(IMO, MMSI)가 필수이지만 이미 제재 대상 선박이거나 선박의 신분을 구태여 나타낼 필요가 없는 경우엔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대표는 다만 이들 선박이 IMO번호는 감추면서 굳이 MMSI를 공개하는 것은 “비상시 유일한 연락 수단이기 때문에 가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들어 북한 유조선의 수상한 운항은 자주 포착되고 있습니다.
VOA는 지난 14일 새벽 중국과 타이완 인근 해역에서 북한 유조선인 천마산호를 발견해 보도했습니다.
천마산호는 유엔의 제재 대상 선박으로,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자산 동결과 입항 금지 조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천마산호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극동지역의 보스토치니항에 입항했으며, 약 3주 뒤인 이날 중국 근해에서 포착된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최근 VOA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가 대북제재 이행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만큼, 안보리를 통한 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미국 등 ‘같은 생각을 가진’ 나라가 독자 제재 등의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와츠 전 위원은 조언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