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과도한 코로나 대응과 한국 정부의 쌀 지원 수령 거부는 주민보다 정권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북한 정권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탈북민들이 지적했습니다. 유엔은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을 북한 당국에 촉구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80일 전투 등 자립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에서 북한식당 지배인을 하며 대북 사업가들과 자주 접촉했던 탈북민 허강일 씨는 최근 중국 내 지인들로부터 힘들다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말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국경을 장기간 봉쇄 중인 북한 당국이 최근 봉쇄와 국경 무역 규제를 더 강화하면서 공식 거래가 사실상 실종됐다는 겁니다.
[녹취: 허강일 씨] “요즘 난리 났데요. 중국 상인들이고 북한 쪽이고. 중국 상인들은 부도나는 회사가 많다고. 단둥 위주로. 왜냐하면 북한과 거래하던 회사들이 돈을 못 버니까 월급도 못 주고 공장도 문 닫고,”
허 씨는 북한 파견 노동자들을 고용한 단둥 동강 부근 중국 업체들만 밀려드는 주문으로 호황을 누릴 뿐 북한 내부와 임가공을 하는 업체들은 물품과 원자재의 반입·반출이 막혀 당황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보면 10월 한 달간 북한과 국경을 접한 랴오닝성과 지린성을 통해 거래된 품목은 ‘전기 전력’이 유일할 정도로 북-중 국경은 사실상 얼어붙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국경봉쇄를 더욱더 강화면서 최근 북한 주민들의 경제 기반인 장마당 물가마저 요동치는 등 주민들의 삶이 더 악화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 국정원의 지난 27일 국회 보고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코로나 방역을 위한 물자반입금지령을 어긴 핵심 간부를 처형하고, 코로나로 인한 오염 우려로 어로와 소금생산을 중단하고 최근엔 평양과 자강도도 봉쇄하는 등 비합리적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식량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부터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추진한 쌀 5만t 지원사업이 북한 당국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국제사회에 북한 수뇌부의 과도한 조치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난해 쌀 수령 거부는 미한연합군사훈련 등 정치적 이유였지만, 올해 이른바 3중고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지원을 거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탈북민들은 그러나 국제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이런 북한 당국의 비합리적 조치는 주민보다 최고지도자의 건강과 정권을 먼저 챙기는 북한 수뇌부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미 북부에 사는 북한 의사 출신 김마태 씨입니다.
[녹취: 김마태 씨] “북한 정권이 인민의 생활보다는 정권의 안전을 첫째로 여기는 정권이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비민주적이고 비인민적이죠. 정말 자기네의 안위와 안락을 위해 상당히 국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당국이 최고지도자의 존엄과 건강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이 자주 무시된다는 겁니다.
과거 석탄 등에 관한 북-중 무역에 관여했었던 북한 엘리트 출신 이현승 씨도 최고지도자 보호 때문에 국가 전체가 봉쇄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코로나 때문에 북한에 온갖 루머가 다 돌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 수뇌부를 향해 코로나를 침투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막으라고 해서 다 막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쌀도 막고. 아시다시피 북한은 모든 것이 최고지도자의 안전에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이 씨는 또 전례를 볼 때 간부들이 주민들의 고통 등 부정적 내용을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기 힘들 것이라며, 쌀 수령 역시 식량 상황이 괜찮다고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지금 자연재해 받고 3중고로 힘들다고 해도 이런 불편한 진실,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도 보고가 안 될 수 있단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쁜 보고를 했다가는 계속 목이 잘리고 가족이 다 죽으니까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안 말할 때가 많단 말입니다.”
영국에서 탈북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인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이런 비상식적인 코로나 대응과 쌀 수령 거부 등을 보며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허상”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 중 눈물을 보이며 인민대중의 복지를 가장 염려하는 것처럼 연출했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을 이런 비합리적 조치로 증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복무하는 게 아니라고 자기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죠. 북한 정권이 지금도 자기들은 사회주의 나라고, 굶는 사람 없다고 이런 선전선동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서 진짜 사악함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 모습을 보면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흡혈귀와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의 제니퍼 바버 특별고문은 지난달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개최한 회의에서 이런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북한의 인권과 인도주의 상황은 여전히 끔찍하다”는 겁니다.
[바버 고문] “The human rights and humanitarian situations in the DPRK remain dire.”
유럽연합을 대표한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유엔 주재 독일대사는 이 회의에서 지난 12개월 동안 북한 내 인도적 상황에 관해 어떤 개선도 보지 못했다며,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완전히 존중”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제사회는 특히 코로나 등 인도적 상황과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 정부에 국제협력을 계속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은 2일 논설에서 80일 전투를 독려하며 “불타는 충성심과 투쟁열”, “자립 자력의 가치”로 “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정신”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