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난 대응 비상설기구 설치…내각책임제 거듭 강조

지난 5일 북한 평양 평천구역의 한 건물에서 보건 요원이 복도에 소독액을 뿌리고 있다.

북한이 심화되는 경제난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비상설 경제발전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제사업에 대한 내각의 지도적 역할을 강화하고 낡은 경제시스템 전반을 손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9일 당 제8기 2차 전원회의 이틀째 회의 보고에서 “비상설 경제발전위원회의 역할을 높일 데 대한 문제를 비롯해 내각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적 문제들을 천명했다”고 10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내각과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이 자기의 고유한 경제 조직자적 기능과 통제 기능을 복원해 경제 전반에 대한 지도관리를 개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볼 때 ‘비상설경제발전위원회’는 당 중심의 국가체제 아래 경제사업 전반에 대한 내각의 지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 즉 임시기구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이전엔 미국과의 회담이나 한국과의 관계에서 비공식적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든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부문에서 당국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만든 건 이례적입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 기구를 통해 북한 경제에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는 고질적인 내부 시스템 전반을 손보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굿파머스 조충희 소장은 대외개방을 거부하고 자력갱생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오랜 낭비적 요소들을 없애고 한정된 내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경제난 심화를 완화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실질적인 낭비가 어디서 이뤄졌느냐 하면 군수공업이나 당 경제, 이런 특수기관들의 경제 쪽에서 낭비가 많이 됐어요. 내각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모든 특수경제들, 돈 버는 외화벌이 회사들, 당 경제를 내각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고 돈이 중앙은행을 경유해서

통일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근데 외화는 중앙은행에 거의 들어가지 않고 특수기관들이 자체로 갖고 있어요.”

북한에선 돈이 되는 알짜기업들은 군수산업인 제2경제위원회나 당과 군 등 힘 있는 기관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의 재정경리부와 39호실, 경공업부 등 전문 부서와 군의 총참모부, 총정치국 등이 제각기 노른자위 기업들을 독식하며 국가 경제를 외면한 채 외화벌이와 자체 이익만을 추구하는 게 적폐로 지적돼 왔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비상설 경제발전위원회는 내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당과 군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기구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이 같은 비상설기구 설치는 북한이 지난 2019년 12월 당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경제 분야에서 내각책임제를 천명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내각의 총리들이 들어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전반적으로 군에서도 노동력을 공급하니까 군 쪽 인사도 있을 것이고 결국 외화벌이라든지 그런 것도 있으니까 그쪽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인사들로 구성이 되겠죠.”

하지만 수 십 년간 당 영도체제가 굳어진 북한에서 내각이 명실상부한 경제사령탑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입니다.

북한에서 내각은 당과 군에 압도돼 전혀 힘을 쓰지 못했고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경제 분야에서 만큼은 내각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지난달 8차 당 대회에서 당내 전문부서로 경제정책실을 신설하고 전현철 당 경제정책실장에게 내각 부총리직을 겸직하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사람이 당과 내각의 보직을 동시에 맡은 경우는 전례 없는 일로, 내각에 힘을 실어 내각 간부의 지시와 지휘에 철저히 따르도록 한 조치인 셈입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내각이라는 전문성을 가진 기구들이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게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인데, 북한은 당이라는 정치 중심의 국가거든요. 근데 내각이 뭔가 하려고 해도 당쪽에서 지원이나 양보가 없으면 안되는 거죠. 근데 김정은 위원장은 내각이 경제 문제를 푸는 데 앞장을 서라고 하는 것이고 그 한계가 있으니까 전현철 경제정책실장을 내각부총리로 보내서 당과의 관계 강화를 지시했는데 그게 안 돌아간다는 게 이번에 또 드러난 거죠.”

‘조선중앙통신’은 앞서 당 전원회의 첫 날인 8일 김 위원장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올해 경제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의 소극적이고 보신주의적인 경향을 신랄히 지적했다”고 전했습니다.

조 박사는 8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 해 목표 수립 과정에서부터 내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한편 지난 8일 시작한 당 전원회의는 10일까지 사흘째 이어졌고, 북한은 회의 종료 일자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