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차 대회 개막연설에서 경제 정책의 실패를 시인하면서, 지난 5년간 북한 경제가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전력을 비롯한 북한 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후퇴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김 위원장] “인민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 부문 사이 균형을 보장해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5개년 전략에는 고질적이었던 전력 문제를 해결하고, 석탄과 금속, 철도 운수 등 부문에서 개선을 이루는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아울러 농·수산업·경공업 등 북한 경제 전반에서 균형적 발전을 이루고, 경제개발특구에 대한 투자 유치와 관광 활성화 등 대외경제관계의 확대, 발전 방안이 강조되는 등 지난 5년간 북한 경제의 최대 과업이자 핵심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약 5년 뒤인 지난 6일 8차 당대회 연설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 계획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녹취: 김 위원장] “그러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실제로 북한 경제는 5년이 지난 현재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대부분 오히려 후퇴한 상황입니다.
먼저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최대 과제였던 북한의 발전 전력양은 2019년을 기준으로 238억kWh로, 전년도인 2018년의 249억kWh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또 1990년의 발전 전력양이 277억 kWh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북한의 발전 전력양은 오히려 30년 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그 밖에 석탄과 금속의 경우, 2016년부터 시작된 유엔 안보리의 석탄 등 광물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로 업계가 큰 타격을 받은 상황이며, 철도 역시 여전히 일제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경제개발특구의 경우, 5개년 전략에 따라 많은 지역을 새롭게 지정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국제사회 제재 속에 투자를 받지 못하고, 이에 따라 제대로 된 운영이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관광 산업 역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역점을 뒀지만 계획된 시일 내에 완공이 되지 못한 상황이며, 기존 관광 지대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관광객이 끊기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성장 목표 미달을 인정했을 당시, 북한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세계 추세에 동떨어진 사회주의식 계획 통제 경제와 핵무력 고수 등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입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He paid a high economic price for his provocative military policy in 2017…”
김 위원장이 2017년 도발적인 군사정책으로 큰 경제적 대가를 치렀다는 겁니다.
뱁슨 전 고문은 김 위원장이 경제 발전이 최우선 과제라고 제시했지만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시작부터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하면서, 그런 노력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외부에서 북한 경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인 북한의 ‘대외 교역’ 역시 2017년 이후 계속 하락세를 거듭하다가 작년엔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수출입 총액은 2016년 57억 달러에서 2017년 49억 달러로 떨어진 뒤, 2018년과 2019년 각각 24억 달러와 27억 달러로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국경 봉쇄 조치가 이뤄진 2020년은 1~11월 사이 교역액이 5억 달러로 내려앉은 상황입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양국의 교역량이 계속 감소하면서 북한의 외화 수입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북한 산업에 필요한 자재 등에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벤자민 실버스타인 연구원은 6일 김 위원장의 5개년 전략에 대한 언급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무역을 다변화하는 것을 계획으로 세웠다고 전제한 뒤 “그 의존도는 틀림없이 더 악화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대외 교역이 급감하고 북한 경제의 전반적인 부문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경제계획에 대한 실패를 자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5개년 전략이 완전히 실패한 재앙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think they may have made some improvement in domestic production of domestic consumer goods that they can sell in the marketplaces…”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오던 상품들을 일부 국산화하는 등 어느 정도 개선을 이뤘지만, 그 외 다른 부문 즉, 중공업과 북한이 목표했던 전기 생산량 증대, 또 철도와 철강, 석탄 등 국가 산업이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이 이런 상황을 대북제재 등 외부의 요인으로 돌릴 수 있지만, 이미 5개년 전략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북한 경제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경제의 문제점은 외부적인 환경보단 ‘체계(system)’ 자체에 있다며, 제재와 코로나바이러스 등은 이미 안 좋았던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