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들어 눈에 띄는 '북한 비핵화' 표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미한 외교·국방장관 회담에 이어 기자회견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 설명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 보다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안소영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8일 서울에서 열린 미한 외교.국방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블링컨 장관] “We are committed to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reducing the broader threat the DPRK poses to the United States and our allies…”

앞서 17일 미한 외교 장관 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블링컨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를 언급했습니다.

또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말 제네바 군축회의 고위급회기 화상 연설에서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반면 한국의 정의용 외교장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기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완전히 비핵화를 했기 때문에 북한도 우리와 같이 1991년도 합의에 따라 비핵화를 같이 하자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매우 당당하게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북한 비핵화라고 하는 것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양측의 입장 차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미한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는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라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1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번 미한 외교.국방장관 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달 11일 블링컨 장관과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의 전화통화 이후 미 국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블링컨 장관이 미한일 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에 참여한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18일 VOA와의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표현은 당시 협상에서 사용된 문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 was originally arrived at was to signal that the both sides need to take steps to eliminate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program. I remember in the 1994 Agreed Frame work, the phrase we used was to resolve the nuclear issues on the Korean peninsula."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위해 미북 양측 모두 관련 조치를 밟아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국제사회가 20년 가까이 ‘한반도 비핵화’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트럼프 행정부 때도 간간이 쓰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차 미북 정상회담 뒤 서명한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했습니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여정 노동장 제1부부장이 교환하고 있다.

또 지난 10여년 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와 각종 국제협약에도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됐습니다.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워싱턴 사무소 소장은 ‘한반도 비핵화’ 표현은 외교적 문구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피츠패트릭 소장]”Calling for denuclearization of the entire Korean peninsula is misleading."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지만,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외교적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조금 더 강경한 접근을 하려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피츠패트릭 소장은 북한은 한국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핵 위협을 제거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두 용어에 대한 논란은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싱가포르 선언에서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프로그램의 포기를 요구하는 문구를 고수하지 못하고 북한 측 용어를 수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링너 연구원] “The failure of the Trump administration to insist on similar language in the Singapore statement and instead accepting the North Korean terminology ….”

클링너 연구원은 앞으로 협상의 기반은 모든 북한의 핵무기와 프로그램 뿐 아니라 유엔 결의들이 요구하는 비핵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