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 희생자 추모의 날..."북한 화학무기 세계 3위"

지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암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 VX 독극물 제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세계 화학전(무기) 희생자 추모의 날(Day of Remembrance for all Victims of Chemical Warfare)을 맞아 화학무기금지협약의 결의 준수를 강조했지만, 북한 정권은 협약 가입을 계속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에 신경작용제 VX를 사용하는 등 세계 세 번째 화학무기 보유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 당국은 보유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30일 세계 화학전 희생자 추모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몇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화학무기에 대한 금기가 무너지면서 군축과 비확산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화학무기 사용은 장소와 사용 주체, 환경에 관계없이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구테흐스 총장] “The use of chemical weapons anywhere, by anyone, under any circumstances, is intolerable and a serious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아울러 화학무기 사용자 처벌은 희생자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부합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화학무기 폐기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세계 화학전 희생자 추모의 날은 유엔이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을 기리고,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결의를 환기하기 위해 2005년부터 제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은 지구상에서 화학무기의 개발·획득·생산·보유·이전·사용 등을 전면 금지하는 국제협약으로 193개국이 당사국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이 협약의 이행을 담당하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화학무기를 독성 화학물질을 이용해 인간과 동물에 사망 또는 상해를 일으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탄약과 장치, 운반 장비와 수단을 포괄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녹취:화학무기금지기구(OPCW) 동영상] “A chemical weapon is any toxic chemical that can cause death or harm,”

특히 적은 양으로 살상 효과를 최대로 높이도록 독성을 강화한 게 특징으로, 산소 교환을 억제하는 혈액작용제, 피부와 눈, 폐 등에 심각한 부식과 수포를 유발하는 수포작용제, 질식작용제, 신경작용제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화학무기는 19세기 화학공업의 발전으로 독성물질이 계속 발견되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됐으며, 1차 세계대전에 처음 대규모로 사용돼 10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국제사회는 화학무기의 참혹성이 입증되자 1925년, ‘전시에 있어서의 생물·화학무기 사용금지에 관한 제네바 의정서’를 체결해 사용 방지에 나섰습니다.

이후 여러 노력을 거쳐 1993년에 유엔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채택했지만, 협약 전후로 이라크와 시리아 등 일부 지역에서 독재 정부가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지속했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그러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18년 기준 전 세계 화학무기의 96% 이상을 폐기했으며 그 공로로 201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구는 현재 193개 당사국, 전 세계 인구의 98%가 화학무기금지협약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그러나 북한과 남수단 등 4개국은 예외로 남아 있어 가입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국제사회에서 화학무기 주요 위협국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산하 육군부는 지난 8월 발표한 ‘북한 전술보고서’에서 북한은 사린가스 등 20여종의 치명적 화학무기 2천 500~5천t을 보유해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지난 2018년에 미국 의회에 제출한 ‘2017 북한 군사안보동향 보고서’에서 북한군이 “포탄이나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재래식 무기들을 개량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면서 정기적으로 관련 방어훈련도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권양주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2013년 언론 매체 기고에서 북한이 16곳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시설의 비축량을 모두 포탄용으로 제조하면 최대 125만 발에 달해 서울시 면적의 4배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미군은 이런 위협에 대응해 지난 2013년, 주한미군 2사단에 제23화학부대를 9년 만에 재배치한 뒤 유사시 북한에 들어가 화학무기를 확보하는 실전훈련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은 특히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요원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에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게다가 북한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조를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확산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지난 2018년 보고서에서 북한이 2012년~2017년 사이 내전 중인 시리아에 내산성(acid-resistant) 타일과 밸브 등 화학무기 제조 물품을 최소 40회 이상 운송했다고 보고했었습니다.

보고서는 또 북한 당국이 중국 업체로 위장해 시리아 화학무기 공장 건설에 물자를 제공했으며, 시리아 내 관련 시설에 북한 기술자들이 활동하는 움직임도 포착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국방정보국(DIA) 정보분석관과 해병대지휘참모대학 교수를 지낸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앞서 이에 대한 VOA의 질문에, 북한 정권이 시리아에 화학무기 관련 지원을 시작한 것은 늦어도 1990년대부터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교수] “Starting at least in 1990s, North Koreans assisted them with the chemical weapons program,”

북한은 1990년대에 시리아에 화학무기 시설을 지어줬고 북한인들이 여전히 해당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당국은 그러나 화학무기 관련 모든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

주용철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지난 2017년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김정남 피살 관련 문제가 공론화되자 북한은 “절대로 화학무기를 생산하거나 비축하지 않았고 사용하지도 않았다며 “우리의 입장은 명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