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에 대한 군사행동 계획을 전격 보류하면서 고조됐던 한반도 긴장국면이 풀릴지 주목됩니다. 북한이 일시적인 숨고르기를 하면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대남 공세 수위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에 대한 대적행위 차원의 군 총참모부의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한 데 대해 한국에선 북한이 소기의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지난 4일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빌미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낸 비난 담화를 시작으로 20일 간 전개된 북한의 대남공세가 내부 불안을 외부로 돌려 체제결속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게 북한의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국제사회 대북 제재로 인한 심각한 내부 경제 사정과 미국의 군사적 압박 강화, 대남공세가 지나칠 경우 한국 내 여론 악화 등 역작용을 우려한 때문이기도 하다는 관측입니다.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어느 순간 그런 취지에서 국면을 전환할 것인가 고민을 해왔다고 봐요. 그런 취지에서 예전에 한번 한국 정부의 처신에 따라서 다음 행동을 계획할 것이라는 (조선신보의) 보도도 나온 바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전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북한으로서도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그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현 단계에선 한 발 물러서자하는 판단이 선 것 같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조치를 남북관계의 새 국면이라기 보다는 기존 대남 공세 국면의 일시적 숨고르기 차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보류 조치가 당 중앙군사위원회 본회의가 아닌 예비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북한으로선 언제든지 군사행동 계획을 본회의에 상정해 승인 절차를 밟을 여지를 남겨뒀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의 조치가 한국 정부의 향후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라며,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한 대처와 4.27 판문점 선언 합의 이행 여부, 나아가선 한국의 대규모 경제 지원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북한과의 교류 확대를 지향하는 문재인 한국 정부가 이번 국면을 겪으면서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이나 종전 선언 촉구 국회 결의 등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이 노리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대남공세가 단순히 대북 전단 때문이 아니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버리고 대북 제재 노선에서 이탈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숨고르기 국면이 끝나면 미국에 대한 압박이 노골화되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이번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전쟁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대목을 주목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지난번 당 중앙군사위서 발표했던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하겠다는 것, 그리고 전략무기를 고도의 격동 상태에 두겠다, 그리고 지난 12일 리선권 외무상 담화, 그리고 오늘 나온 발표까지 그것은 결국 미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다종화 고도화를 하겠다는 그런 의지가 다 포함돼 있는 거죠.”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조치로 김 위원장과 여동생인 김 제1부부장의 역할 분담이 보다 명확해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이 그동안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 차단,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강경 조치를 주도하는 악역을 담당했다면 김 위원장은 언제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이른바 ‘남매정치’의 치밀한 셈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은 이번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화상회의로 진행하면서 김 위원장의 관련 사진을 관영매체에 일절 싣지 않았습니다.
또 김 위원장의 대미 또는 대남 직접 비난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을 둘러싼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한국이나 미국을 향해 최고지도자 간 유대를 통한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겨놓은 포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남매정치’가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고 특히 대남 심리전 무기로 전방지역에 확성기를 재설치한 지 사흘만에 철거 작업에 들어간 과정은 매끄럽지 못한 대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을) 뿌렸거든요. 저쪽이 더 화를 내야 되는데 오히려 안정화시키는 조치를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확성기도 모호한 선택이었고 그것도 바로 즉흥적으로 걷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일련의 과정에서 김정은식 가족정치, 남매정치의 즉흥성과 불안정성이 도처에 드러나고 있다 이건 좀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기분이 좀 안 좋죠.”
전방지역 확성기는 성능면에서 한국이 월등해 과거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심리전 무기로 여길 만큼 골칫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내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확성기 재설치가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